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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후레자식들’의 나라 / 정남구

등록 2007-06-28 17:43

 정남구/논설위원
정남구/논설위원
아침햇발
손주들 재롱을 보고 여행을 다니며 여생을 즐길 나이에 우리나라 노인들이 일터로 나가는 것은 대개 생계 때문이다. 모아둔 돈은 없는데 나이 들어 의료비는 많이 들고, 어렵게 사는 자식들한테 손을 내밀기도 어려우니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한다. 우리나라처럼 많은 노인이 생계를 꾸리느라 일하는 나라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 65살 이상 노인 인구 가운데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사람은 2005년 현재 30%에 이른다. 1~3%에 불과한 영국·독일·이탈리아는 물론이고, 미국의 15%, 일본의 19.8%보다도 훨씬 높다. 노르웨이 등 몇몇 북유럽 쪽의 예외는 있지만, 노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은 것은 대체로 노인복지가 뒤떨어진 나라의 특징이다. 비농가 65살 이상 노인도 다섯 가운데 한 사람이 일을 할 정도니, 우리나라에 농사짓는 노인이 유독 많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일하는 노인들의 처지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상용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체에서 일하는 40대 초반 노동자의 평균임금을 100이라고 할 때, 같은 사업체의 60살 이상 노동자의 임금은 1993년 76에서, 2005년 60까지 급추락을 해 왔다. 이들처럼 제법 큰 회사에서 일하는 노인은 그나마 처지가 나은 편인데, 그 수가 27만여명에 그친다.

고령 노동자 대부분은 단순노동에 종사하는 저임금 비정규직이다.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력을 갖추지 못하고, 연공임금 체계 밖으로 아예 쫓겨난 이들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2005년 8월치 경제활동 인구 부가조사 결과를 분석했더니 60살 이상 노동자의 88%가 비정규직이었다. 2001년 85%에서 그 비율이 더 높아졌다. 일자리는 적은데 일하려는 노인들은 넘쳐나고, 게다가 이들이 단순노동 부문으로 몰리니 임금 수준은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노인들의 이런 처지를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자살’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데, 노인 자살의 급증이 가장 큰 원인이다. 70대 초반 노인의 자살률은 1990년 인구 10만명당 16.6명에서 2005년 74.7명으로 무려 4.5배나 높아졌다. 60대 후반 노인의 자살률은 17.1명에서 62.6명으로, 60대 초반은 12.8명에서 48명으로 급증했다. 고령자일수록 자살률 증가가 가파르다. 부끄러워 국제사회에 드러내놓기조차 어려운 통계다.

지금도 나이 들어 직장을 떠나는 이들의 상당수는 앞길이 막막하다. 퇴직금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적고, 연금제도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척되는 나라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극단적인 선택은 더 늘어날 것이고, 전설 속의 고려장이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다. 자식한테 부모를 책임지라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모든 이가 능력있는 자식이 될 수는 없는 까닭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60살 이상 노인 가구 넷 가운데 하나는 한 달 가구 총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미치는 절대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기초노령연금제가 내년부터 시행되지만, 저소득 노인에게 월 8만~9만원을 지원하는 것이니, 언 발에 오줌누기다. 고령화가 더 진척되기 전에 재원 마련 방안을 찾아야 한다. 앞으로 7~8년 지나면 생산 가능 인구도 줄어들기 시작하니,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도 세금부터 대폭 깎아주겠다고 외쳐대는 정치인들을 보면, 이 나라가 ‘후레자식들의 나라’로 떨어지는 것을 과연 피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정남구/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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