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논설위원
아침햇발
이른바 여권 대통합이 막바지 고빗길에 이르렀다. 통합의 실질적 주체인 열린우리당과 통합민주당, 탈당파의 대표 네 사람이 지난주말부터 통합 방식 등을 놓고 구체적인 협의에 들어갔다. 한시가 급한 창당과 경선 일정 등을 고려할 때 이번주까지는 가부간 매듭이 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대통합이니 중통합이니 소통합이니 복잡하게 떠들던 여권 각 세력이 ‘크게 뭉치자’는 데는 의견일치를 본 듯하다. 남은 핵심 쟁점은 ‘친노세력’, 그 중에서도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등 친노 상징 인물들의 거취 문제다.
통합민주당과 탈당파 다수는 이들 친노파를 ‘이질세력’이라고 부르면서 통합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은 친노파 상징 인물만 빠지면 당장이라도 통합에 합류하겠다는 태도다. 이들뿐 아니다. 여권의 주요 대선주자 진영도 드러내놓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유 전 장관 등 몇몇은 빼고 갔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심지어 열린우리당 의원들 중에도 그런 이가 적지 않다. 상징적으로라도 친노파가 몇 명 빠져야 통합당이 ‘도로 열린우리당’이라는 비판을 덜 받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여기에는 또 ‘옳은 얘기도 싸가지없이 하는’ 유 전 장관 등에 대한 여권 사람들의 정서적인 거부감도 짙게 깔려 있다. 한마디로 여권은 대통합을 위한 정치적 희생양을 찾고 있다.
그러나 친노파에 대한 여권의 집단 따돌림은 정치발전을 위해서나 도의적 측면에서나 문제가 많다. 먼저 명분이 없다. 노 대통령이나 그의 정치적 분신들이 대부분 모나고 튀는 독선적 스타일이라는 데는 별로 이견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기간당원제 추진에서 보듯 무모하고 섣부를망정 정치 개혁을 꾸준히 고민해 온 세력임은 분명하다. 부패도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게 중론이다. 최근에는 “이제 철이 든 것 같다”며 몸까지 낮추고 있다. 그런데도 함께 당을 만들어 활동했던 사람들이 동반 인기 하락을 우려해 결별하자는 것은 야박하다.
일부에서는 친노파가 급진적이어서 함께 못하겠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제3자의 눈에 비친 친노파는 급진적이기보다는 항상 좌깜빡이 넣고 우회전해 온 매우 보수적인 친시장주의자들이다. 어쨌든 유시민, 김두관과 박상천, 강봉균의 정체성 차이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박근혜와 원희룡, 고진화의 차이보다 훨씬 적다. 또 친노파를 내치면 10%에 안팎에 이르는 노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을 아우를 수 없다. 현실적으로 이 10%가 없이는 대통합 세력이 목표로 하는 연말 대선과 내년 총선에서의 승리는 고사하고 선전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노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출범 때의 화려한 기대와 달리 정치적으로 일찌감치 어려운 처지에 빠진 이유의 하나는 4년 전 민주당 분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깃발은 화려했지만, 지지기반은 안에서부터 무너졌다. 친노파 배제도 이른바 중도개혁 세력의 분열이라는 면에서 민주당 분당의 재판이 될 것이다. 특히 친노파는 대부분 영남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이들과의 결별은 김대중 정부 이래 조금씩 터를 넓혀 왔던 동진정책의 손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친노파가 빠지든 말든 여권 통합으로 만들어질 새 당은 열린우리당의 공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새 당에 참신한 정치권 바깥의 세력이 가담한다고 해서 열린우리당의 뿌리와 색깔이 지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화장해도 신당 참여세력들의 역사적 경험과 뿌리가 대부분 같다는 것을 국민이 다 안다. 새 사람, 새 당이라고 너무 내세울 게 못 된다. 그보다는 겸허하게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개혁 정체성을 새롭게 해야 한다. ‘도로 열린우리당’ ‘도로 민주당’이라는 비판이 두렵다면 통합을 얘기하지 말아야 한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