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 / 르포작가
삶의창
1989년 6월 어느 날이었다. <한겨레> 사회면 한쪽, 네모 쳐진 기사가 내 눈을 붙들었다. 120여일을 위장폐업에 맞서 싸운 구로공단 한국슈어프러덕츠 노동조합 이야기였다. 외자기업으로 치과재료를 만들던 회사는 위기에 처한 것도 아닌데 문을 닫았다.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모여 위장폐업을 철회하라고 싸웠다. 마침내 다시 현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벌써 18년이 지난 슈어프러덕츠 노동자들을 기억하는 건, 그해 5월에 친구들과 와이에이치(YH)무역 여성 노동자들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하고 난 뒤여서다. 그해는 1979년 8월11일, ‘101호 작전’이라는 이름 아래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던 와이에이치 여성 노동자들을 경찰이 폭력으로 진압한 지 10년이 되던 해였다. 위장폐업에 맞서, 민주노조를 없애려는 정권에 맞서 4개월이 넘게 싸우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그 10년 되는 해에 슈어프러덕츠 여성 노동자들 이야기를 읽다 보니, 어째서 긴 시간이 지나도 노동자들이 선 자리는,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일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지 답답했다. 마음이 불편해 무작정 노조에 전화하고 찾아가 투쟁 기록을 정리한 자료집을 얻고, 싸우는 동안 잡혀가 감옥에 갇혀 아직 안 나왔겠지 했던 노조위원장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여성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슈어프러덕츠에서 18년이 지나도, 와이에이치에서 28년이 지나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달라졌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 한 달, 석 달, 여섯 달짜리 노동자가 되어 온갖 차별을 받으며 일하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내동댕이쳐지는 일회용 노동자로 살아야 하는 게 요즈음이다. 그래서 부당 해고와 차별을 없애라고 싸울라치면 이건 120여일은 우습게 1년이 가고 2년이 가고, 낙엽 쌓이듯 세월만 간다. 슈어프러덕츠가 있던 구로공단은 가산 디지털단지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거기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은 2년 가까이,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여성 노동자들은 5년을 싸운다. 어찌 이 두 곳뿐이겠는가, 여성 노동자들만이겠는가. 일회용품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 장기 투쟁 사업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싸우는 노동자들이 곳곳에 있다.
18년, 28년이 지나는 동안 경제는 성장하고 발전했다. 분명 노동자들이 만들어 냈다. 하지만 여성 노동자들은 화장실도 제때 가지 못하고, 하지정맥류에 걸려가며 힘들게 일한다. 하루 수백이 넘는 고객한테 환한 미소로 꾸벅 절하게 하면서도 계산대에 의자를 놓거나 교대 인원을 충분히 두는 건 생각하지 않는 기업, 주주와 고객은 모셔도 노동자는 모실 줄 모르는 자본주의를 산다.
언젠가 밤길을 함께 걷던 열 살 난 아이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뜬금없이 이런 말을 했다. “엄마가 아는 사람들 있잖아. 그 사람들이 아는 사람, 아는 사람 이렇게 하면 사람들은 모두 다 아는 사이일지도 몰라. 저 사람도 엄마는 지금 모르지만 엄마가 아는 사람이 아는 사람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 엄마 친구일 수도 있는 거지.”
그럴 거다. ‘사람’인 우리는 이어졌을 거다. 그렇기에 지금 부당함과 차별에 맞서 매장을 점거해 싸우는 이랜드 노동자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불편할 것이다. 사야 할 물건을 사지 못해서가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이 노동자로 사는 이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맞닥뜨려 마음이 못내 불편할 것이다. 내일 일자리를 얻어야 하는 누군가는 백지계약서 같은 건 쓰지 않게 하겠다고, ‘비정규직 인생’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른 나’인 저이들이 대신 싸우기에 말이다. 18년 전, 28년 전처럼 여성 노동자들은 여전히 싸운다. 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박수정/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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