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잡탕보다 가벼움이 문제다 / 김종철

등록 2007-08-02 17:43

김종철/논설위원
김종철/논설위원
아침햇발
모레 창당대회를 여는 가칭 ‘미래창조 대통합 민주신당’을 두고 잡탕 논란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은 ‘여권 신당=잡탕 정당’이라고 연일 비판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여권 신당의 일원이 될지를 놓고 막판 고심 중인 통합민주당 안에서도 “열린우리당이 통째로 참가하는 잡탕 정당에는 동참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어느 모로 보나 여권 신당이 잡탕인 것은 맞다. 우선 참여세력이 잡다하다. 기존 정치권에서는 열린우리당, 민주당 일부 세력 , 그리고 한나라당 출신의 손학규 전 지사 쪽 등이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정치 경험이 적은 시민사회 진영까지 합세했다. 참여 인사들의 색깔도 각각이다. 열린우리당의 386 개혁파부터 우파 시장주의자까지 결국 다시 모인다. 게다가 손 전 지사나 시민사회 쪽 사람들의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잡탕이라는 표현이 딱이다.

잡탕 정당은 싫다는 민주당 박상천 대표나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는 조순형 의원의 ‘소신’은 백번 옳다. 이들이 주장하는 중도개혁주의의 실체가 뭐든 자기 노선을 지키겠다는 것은 부박하기 짝이 없는 우리 정치판에서 존중받을 만한 태도다. 그러나 이들이 내세운 원칙과 기준에는 일관성이 없다. 민주당의 잣대는 매우 간단하다. 열린우리당의 ‘이질세력’ 곧, 유시민 의원 등 핵심 친노파의 참여 여부다. 이들이 신당에 들어오면 잡탕이고, 빠지면 정당한 대통합이 된다. 10여년 이상 전혀 다른 정치적 경험과 노선을 걸었던 손 전 지사 쪽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민주당의 잡탕 정당론이 논리적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정치적임을 보여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른바 국민정당을 표방하는 비이념정당은 모두 잡탕적인 데가 있다. 집권을 위해 노동자 서민부터 중산층, 나아가 부유층까지 모든 계층을 다 아우르려니 그렇다. 정책 모순이나 내부 갈등 등 문제점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민 통합을 추구한다는 면에서는 순기능도 있다. 세계의 많은 정당들도 중도주의의 국민정당을 표방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새로운 정당 모델을 보여주는 민주노동당을 제외하고는 다 잡탕 정당이다. 원조는 물론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은 정치군인들이 만들었던 민정당과 정통 야당의 통일민주당, 박정희 독재정권의 잔재인 신민주공화당이라는 각각 뿌리가 다른 세 집단이 합해서 만들어졌다. 그 때문에 1990년 합당 이후 오랫동안 자기들끼리 싸움박질하느라 한시도 바람잘 날이 없었다. 많은 인물들이 나가고 들어왔지만, 현재도 원희룡 의원에서 김용갑 의원까지 구성원들의 면면이나 색깔이 여전히 잡탕이다. 얼마 전 당 지도부가 마련한 새 대북정책을 당론으로 분명하게 채택하지 못할 정도다.

가능한 동질의 세력이 한 정당에 모이면 좋지만 설령 잡탕이더라도 결정적인 하자는 못 된다. 혼합 정당이 불가피한 면도 있다. 결선 투표가 없는 상태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정당 연합을 하거나 아예 한살림을 차릴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정당 구성원 사이에 최소한의 유대를 확보하면서 지속하는 것이다. 정당의 정체성은 이념이나 가치관뿐 아니라 공유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공동의 문화가 진득하게 쌓이기 전에 걸핏하면 부수고 나누고 새로 만드는 가벼운 정치인과 정당에 누가 정을 붙이겠는가. 여권 신당 만들기도 마찬가지다. 참가 세력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정치공학에만 몰두할 게 아니다. 그간 서로 잘못을 사과 반성하고 앞으로는 어려움을 끝까지 함께한다는 동지적 유대부터 확인해야 한다. 그런 진정성 없이는 통합도 안 되고, 합하더라도 또다른 실패가 될 뿐이다.

김종철/논설위원phill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