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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콩팥으로 떼준 부정 / 박경철

등록 2007-08-10 17:40수정 2007-08-24 17:55

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삶의창
작년 이맘때 장호가 병원에 왔다. 축구를 하다가 넘어졌다는 것이다. 오른쪽 팔목이 퉁퉁 부었고, 손목이 뒤로 젖혀지지 않았다. 우선 가벼운 부목을 댄 후 방사선 촬영을 했더니 손목관절에 분쇄골절이 있었다. 그냥 깁스를 하는 것만으로는 치료가 무리라고 판단해서 부모님께 연락한 다음 인근 종합병원으로 옮겼다.

일주일이 지난 뒤 장호 어머니가 나를 찾아왔다.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장호 수술은 잘 되었나요?” 하고 물었더니 “선생님 혹시 서울에 잘 아는 병원 있으면 좀 소개해 주세요”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요? 장호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어요?” 놀라서 되묻자, “선생님 그날 종합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기로 하고 바로 입원을 했어요. 그런데 다음날 수술 전 검사를 했는데 신장이 많이 나쁘대요.”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주섬주섬 꺼냈다.

“선생님 이것 좀 봐주세요. 이게 나빠서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는데, 잘못하면 신장 이식을 해야 할 수도 있대요.” 장호 어머니는 떨고 있었다. 멀쩡한 아들이 신장 이식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를 들은 어머니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선생님 다시 좀 봐주세요. 장호가 정말 이식을 해야 되나요?”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결과지에는 단백질을 분해하여 나오는 대사물인 번(bun)이라는 수치와 근육에서 항상 일정하게 분비되는 물질인 크레아티닌(creatinin)이라는 수치가 각각 100과 9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상 수치가 24와 1이니 상당히 높은 것이었다. 이 정도면 신장 기능이 거의 작동을 멈추기 전인 상태였다. 결국 장호는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고, 신장 이식까지 받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장호 아버지와 장호의 조직이 서로 적합한 것이어서, 아버지의 신장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수술은 이루어졌고, 장호는 퇴원했다.

그런 장호가 심한 완선증에 걸려서 지난주에 나를 찾아왔다. 아이의 몸에 곰팡이가 그렇게 심하게 감염된다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장호 어머니에게 아이가 지금 면역 억제제를 복용 중인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그가 또 한숨을 푹 내쉬면서 “지금 장호 상태가 별로 안 좋아요. ‘크레아티닌’이라는 수치가 2∼3을 오르내려서 병원에서 걱정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게 1이 되어야 한다는데, 콩팥 기능이 지금 아슬아슬하대요.” 아직 거부반응이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신장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래요. 그래도 좋아지겠죠 뭐. 근데 장호 아버지는 좀 어때요?” 내가 장호 아버지의 소식을 물어본 이유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었다. 장호 아버지는 개인택시를 하고 있지만, 가정사에 많이 소홀한 분이었다. 도박에 자주 손을 대서 택시가 압류되기도 하고, 술이 잦아서 집에서 식구들에게 잦은 폭력을 쓰기도 하는 분이었다. 사실 아버지가 장호에게 신장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약간 놀랐을 정도로 무심한 분이었다.

“얘 아버지는 정말 너무 달라졌어요. 술도 끊고, 일도 열심히 하고, 장호가 그렇게 되고는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다 자기 때문이라고 ….” 어느새 장호 어머니의 눈에 습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수술 때문에 없는 살림에 빚도 많이 지고, 자기 콩팥까지 장호에게 줬는데, 상태가 지금 저러니 ….” 그의 눈에 만가지 근심이 서려 있었다. 겨우 마음을 잡은 남편, 여전히 아픈 아이, 빚더미에 올라선 경제사정, 어느 하나 장호 어머니에게 아슬아슬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장호 어머니에게는 아이의 상태도 남편의 심경도 모두 두려운 일이었다. 어머니로서 아내로서의 짐이 태산처럼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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