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논설위원
아침햇발
한나라당 경선이 끝난 뒤에 이명박 후보가 쓴 <신화는 없다>(1995년)와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2002년) 등을 꼼꼼하게 다시 읽었다. 대선 후보로서 “한나라당의 색깔과 기능을 바꾸겠다”는 첫 화두를 던졌기에 그가 가진 색깔이 도대체 뭔지 궁금했다. 옛날 책 등에는 아무래도 그의 내면 세계와 가까운 무엇이 있을 듯 싶었다.
예상보다는 색다른 것이 의외로 많았다. 우선 경제 분야부터 보면 그는 우리의 재벌체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경제개발 초기부터 80년대 고도성장기의 재벌 역할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재벌형태와 제왕적 지배구조로는 스피드한 변화추세에 맞출 수가 없고” “비합리적인 재벌들의 족벌 경영은 21세기와는 맞지 않는 시스템”(<절망이라지만 …>)이라고 말했다. 전문 경영인 출신으로 당연한 주장일 수 있지만, 한국 경제가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에 대한 인식만은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책에 있는 이 후보의 기업관이나 노동관도 나름대로 ‘훌륭’했다. 그는 “기업 스스로 지배구조, 재무구조, 기업의 투명성 등을 국제적 수준으로 올려놓아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요구하고 노동조합이 오늘날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된다고 말하기 이전에 기업 스스로 먼저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절망이라지만 …>)고 역설했다. 여권의 개혁적인 대선주자가 한 말로 착각될 정도다. “국가는 세금을 받으면 정말 국민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국민들에게 삶의 질을 유지해줄 수 있는 복지 수준을 유지해줘야 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남북문제에 대한 그의 원래 생각도 상당히 ‘열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북 경협은 우리가 북한을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원조가 아니라 경제협력이다. 남과 북이 같이 발전하자는 것이다”(<신화는 없다>)는 주장은 햇볕정책의 뿌리를 보는 느낌이다. “전쟁의 상흔이 없는 세대들이 만나 진정한 민족애를 느낄 수 있는 문화를 함께 향유한다면 그것만큼 민족의 화해에 대한 비전이 어디 있겠는가”(<절망이라지만 …>)라며 비무장지대에 청소년 공연장을 공동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또 비무장지대에 화력발전소를 지어 남북이 전력을 나눠 쓰자고도 했다. 그 주장만으로도 참신하고 전향적이다.
그러나 대선 활동을 시작한 뒤 이 후보가 보여준 모습은 이와는 딴판이다. 합리적인 기업관이나 노동관은 없고 오로지 친기업주의나 성장 제일주의, 개발 지상주의만 있다. 기업에 대해서는 온갖 세금을 낮춰주고 규제를 풀겠다는 달콤한 약속을 늘어놓는 반면에 노동자에 대해서는 “정치노조, 강성노조, 불법파업을 없애겠다”(7월31일 울산 합동연설회)며 강경 일변도다. 또 북한 핵실험을 이유로 햇볕정책의 전면적인 실패를 주장한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핵이 있는 상태에서 협상하면 핵을 인정하는 것 아니냐” “노무현 대통령이 의제를 분명히 하지 않고 잔뜩 합의해올까 걱정”이라며 은근히 딴죽을 걸고 있다. 자신이 내세운 실용주의와 어긋난다.
이명박호의 한나라당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이 후보는 확실히 바뀔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 지지율 1위의 대선 후보가 친기업, 반노동, 대북 강경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본인이나 나라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개혁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균형감을 찾기 바란다. 민주당과 국민중심당 등을 끌어들이려는 판짜기 시도도 틀렸다. 전문 경영인 출신의 비주류 정치인답게 자신의 고유한 색깔을 내야 한다. 그래야 대선에서 이기든 지든 정치인 이명박의 이름이 남는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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