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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사라진 가게들 / 박수정

등록 2007-08-24 18:05

박수정/르포작가
박수정/르포작가
삶의창
며칠 전 밖에서 놀다 온 아이가 아주 중요한 소식을 전하듯 말했다. “엄마, 폐업이 뭐야? 누나네 있는 가게, 폐업이라고 써 놨어.” 그렇잖아도 휴가가 너무 길다 싶었다. 가게 유리문에 붙여놓은 종이에 적힌 대로라면 벌써 2주 전에 문을 열어야 했다. 가게는 다시 열리지 않았고 젊은 주인들도 보이지 않았다.

집에서 좀 떨어지긴 했지만 그동안 아이와 들르곤 한 가게였다. 집 가까이에도 가게가 있는데 일부러 거기까지 간 건 아니다. 다만 한 동네 사는 언니 집을 오가면서 아이는 얼음과자를 집어 들고 나는 가끔 두부나 콩나물, 달걀을 사기도 했다. 많이 팔아주지 못해 미안했다. 주인 부부는 늘 잔잔하게 웃었고,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해, 가게가 들어설 때 좀 불안하기는 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대형할인매장이 있는데 얼마나 물건이 팔리겠는가. 24시간 편의점도 곳곳에 있어 지나가는 손님을 상대로 할 수도 없었다. 워낙 있던 동네 가게들도 하나둘 없어지거나, 지나온 시간을 밑천으로 간신히 버티는데 아무래도 새로 생기는 작은 가게들은 어렵지 않겠는가.

몇 달이 지나자 주인은 가게 앞에 작은 게임기 두 대를 놓았다. 학교 근처 문방구마다 놓인 게임기다. 초등학생들이 100원을 집어넣고 넋 나간 듯이 두드려대는 게임기다. 돈 좀 벌자고 게임기를 놓을 사람들이 아닐 텐데,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건가 씁쓸했다. 얼마 안 가서 가게 한쪽 벽에 비디오테이프를 가져다 놓고 빌려주었다. 바로 옆에 커다란 비디오 대여점이 생기면서 그 벽장은 쓸모가 없어졌다. 그 뒤 가게 한쪽에 낯선 게 있어 물어보니 곡식 도정기였다.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현미로, 7분 도미로, 5분 도미로 깎아준다고 했다. 어떻게든 가게가 살아남게 나름대로 찾아낸 방법이었다.

그러던 가게가 문을 닫았다. 조금 남은 현미를 다 먹으면 여기서 현미를 팔려고 했는데. 일부러 가서 내 눈으로 확인했다. 아니 확인하러 간 건 아니다. 혹시 가게를 정리하러 주인 부부가 나와 있다면 그냥 인사를 하고 싶었다. 아무 위로도 안 되겠지만. 여러 날 그 앞을 지나도 두 사람은 볼 수 없었다. 폐업, 두 글자만 힘없이 고개 숙인 사람처럼 유리문에 붙었다.

아이가 손가락을 꼽으면서 올해 사라진 가게들을 읊는다. 집 어귀에 있던 과일가게. 돈 없을 땐 귤이나 사과를 천원어치도 살 수 있는 가게였다. 비디오 가게도 문을 닫았다. 며칠 늦어도 야박스럽게 벌금을 매기지는 않았다. 제일 오래되었던 식료품점도 문을 닫았다. 일하던 주인 부부와 동생 모두 아이한테 꼭 말을 걸어주었다. 가끔 혼자 소주 한 잔 들이켜시던 문방구 아저씨도 얼마 전 가게를 정리했다. 이 가게들 모두 내가 보아온 것만도 13년이다. 채소집은 그보다 앞서 없어졌다. 갈 때마다 밥 먹었냐며 한 술 뜨라고 하던 아주머니. 이른 아침마다 리어카에 수산시장에서 떼어 온 생선을 담아 골목을 다니던 아저씨 목소리도 듣기 어렵다. 모든 걸 한 곳에서 다 팔아버리니 작은 가게들이 버티질 못한다. 골목에는 생선장수, 과일장수, 채소장수가 더는 없다.

대형할인매장이나 동네 큰 슈퍼마켓엔 깨끗하고 다양한 물건이 있긴 하나, 골목에 있던 작은 가게들을 따라갈 수 없는 게 있다. 작은 가게 사람들은 아이 이름을 기억하고, 길 가다가라도 마주치면 아는 척 해주고, 가끔씩은 뭐라도 하나 손에 쥐어주고,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그 모습을 봐왔기에 아이들한테서 세월을 가늠한다. 내 앞가림도 잘 못하는 나는 오늘따라 골목에서 사라진 가게들과 사라질 가게들이 마음에 걸린다.


박수정/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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