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논설위원
아침햇발
자산가격 급등세가 꽤 오래 이어진 뒤에도, “혹시 거품이 낀 것 아니냐?”고 경제학자들에게 물으면 흔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거품은 꺼지고 나야 확인할 수 있다.” 그런 경제학자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이 경제에 끼친 영향’을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평가하기엔 아직 너무 이르다.”
최근의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유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파장이 “우리 경제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경제관료들의 말에서도 비슷한 답답함을 느낀다.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은 모기지론과 관련한 미국 채권에 투자한 액수가 많지 않다. 그러니,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는 맞다. 하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다. 이번 사태가 미국의 집값거품 붕괴에서 비롯했다는 게 바로 핵심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손가락이라면, 미국 주택시장은 달이다. 우리 주택시장 문제를 돌아보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경기 진작을 위해 장기간 초저금리 정책을 폈다. 그 결과 집값이 급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집값 상승률은 미국보다 우리나라에서 훨씬 가팔랐다. 가계의 부채 증가율도 우리나라가 훨씬 가팔랐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문제가 먼저 불거진 것은, 금리가 우리보다 훨씬 빨리 올라서다. 미국의 경우 올 들어 집값이 급락하고 있다. 우리나라 집값은 완만하긴 하지만 지금도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가계가 아직 이자 부담을 견딜 만 하고,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정책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도 있어 막차에 올라타려는 사람이 여전한 까닭이다.
하지만, 이런 흐름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는 없다. 가계의 이자 부담은 2005년 이후 급증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계 부채 증가세가 여전한 것은 심각한 일이다. 가계는 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워지자 최근 들어 금리가 비싼 제2금융권으로 대출처를 돌리고 있다. 2분기 가계대출은 10조원 가까이 늘었는데, 특히 농·수협 단위조합과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 비은행금융기관의 가계대출이 5조6565억원이나 늘었다. 1분기 증가액의 네 배가 넘는다. 시장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가계가 훨씬 많은 이자를 감수하면서까지 대출을 계속 늘려가는 것은 투기적 거래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는 얘기다.
거품이 커진 상황에서 통화정책은 딜레마에 빠지기 쉽다. 적정 수준을 밑도는 금리를 그대로 두면 투기적 거래는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고 금리를 급격히 올리면 자칫 거품이 터지면서 후유증이 심각해질 수 있다. 최선은 문제를 더 키우지 않는 것이다. 정책 결정자들은 문제가 드러나는 것을 될수록 뒤로 미루려는 속성이 있다. 그것이 상황을 더 곪게 하곤 한다.
가계대출의 쉼없는 증가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와 미국이 다른 점은 주택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은행의 부실은 그리 크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 상승기의 막바지에 큰빚을 얻어 집을 산 가계의 손실은 불가피할 것이나, 이는 정부나 통화당국이 감당할 몫이 아니다.
금융통화위원회가 이미 7월과 8월에 콜금리 목표치를 올렸다. 연말로 가면 미국 주택경기 침체의 간접적 영향을 받을 수도 있어, 이 달에 콜금리를 또 올리는 것은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경기가 상승세를 보이는 지금이 금리를 적정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는 드문 기회임을 명심해야 한다. 최소한, 경기 회복세가 이어진다면 앞으로 금리가 더 올라갈 것이라는 신호라도 확실히 보내야 한다. “거품은 언젠가는 터진다”는 평범한 이치를 미국 사태가 또 한번 일깨우고 있지 않은가?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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