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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새가 돼 훨훨 날고픈 어머니 / 이창곤

등록 2007-10-04 17:51

이창곤/논설위원
이창곤/논설위원
아침햇발
노인은 외롭다. 아픈 노인은 더 외롭고 우울하다. 고희를 훌쩍 넘긴 어머니의 유일한 친구는 라디오다. 하루 종일 라디오 곁에 누워 지낸다. 불교방송의 가장 지독한 애청자가 아닐까 싶다. 어둑한 새벽녘, 당신의 방엔 독경소리만이 아니다. 가아아악, 가래 기침에 이어 온몸을 쥐어짜는 신음. 당신은 ‘종합병원’이다. 결핵은 한쪽 폐를 망가뜨렸고, 당뇨병은 시력마저 앗았다. 시골 면장의 장녀로 고이 자랐건만, 신발·인형·자전거 공장 등에서 반평생 넘게 ‘공장 아줌마’로 살았다. 청상과부로 오남매를 홀로 키워온 질긴 세월. 당신에겐 자식들의 생존과 장래밖에 없었다. 병은 당신의 생애가 찍은 ‘화인’(火印)이자 훈장(?)이다.

‘눈 까진 병신으로 경로당을 오간다’고 하지만, 그곳에서도 당신은 천덕꾸러기다. 화투를 치지도 못한다. 잘 볼 수 없으니 드실 때마다 음식물을 흘린다. 노인들마저 당신을 ‘깔본다’고 한다. ‘가슴속에 늘 불(火)이 인다’는 당신. 편히 몸 둘 곳, 마음 둘 곳 없기 때문인가. 아들에게 가끔 던지는 말은 너무나 아연하다.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가고 싶어….”

10월은 노인의 달이다. 2일은 노인의 날이기도 했다. 적잖은 이들은 이런 달과 날이 있었던가 하고 의아해할 것 같다. 그럴 수밖에. 달력과 일부 단체의 행사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다. 그나마 이맘때면 한번쯤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주니. 따지고 보면 어머니 세대의 노인들은 이 나라 산업화의 주역이었다. 젊어선 자식은 물론 부모까지 부양했다. 우리들이 이만큼 끼니 걱정 없이 누리는 것도 그들의 땀과 눈물 덕이다. 그러나 지금 이들의 처지는 어떤가? 이젠 손주들에게 우선순위가 밀려 방치돼 있지는 않은가. 용도 폐기된 물건처럼 취급되고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 노후까지 책임져야 하는 운명이 아닌가.

오직 생존과 자식들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해온 그들이기에 노후대책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65살 이상 노인 중 공적연금을 받는 이는 열에 1.5명뿐이다. 전체 노인가구 중 열에 세 가구의 소득은 월 50만원 이하이며, 노인가구 중 열에 네 가구가 빈곤선 아래에 놓여 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생활이 가능한 노인은 55만명이지만, 이들 중 0.008%한테만 돌보미가 파견된다는 통계도 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은 아이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돌봄을 받아야 할 노인들은 더 절실하다.

정부는 내년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와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돼 노인복지가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주창한다. 하지만 태산명동서일필일 공산이 크다. 요양보험제도는 시설과 인력 등 준비가 태부족인데다 적용 대상 노인도 고작 3%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기초노령연금도 본인이 신청을 해야 하는데다, 액수가 너무 적어 실질적인 도움이 못 될 것으로 보인다.

노인문제는 아들과 딸·며느리만이 짊어져야 할 문제가 아니다. 개별 가정의 문제가 아닌 국가와 사회의 문제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이 진실로 이뤄지고 있나? 노인이 방치된 가정은 행복할 수 없다. 노인을 외면하는 사회와 국가 또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꾀할 수 없다. 일할 수 있는 이들에겐 일자리를, 병든 이들에겐 생활보조와 서비스가 주어져야 마땅하다. 노인에 대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노인은 단순히 무능력하고 의존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충분히 대접받을 권리가 있는 이들이며, 당당한 우리 사회의 일원이다. 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노인들이 든든한 노년을 누리면서 활짝 웃을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이창곤/논설위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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