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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택시 부가세’부터 해결해 보라 / 정남구

등록 2007-10-22 18:18

정남구 논설위원
정남구 논설위원
아침햇발
2004년 초 부산의 한 택시기사가 회사로 찾아왔다. 정부가 법인택시 회사의 부가가치세를 절반 감면해 주고 그 돈을 택시기사들의 처우 개선에 쓰도록 하고 있으나, 택시회사들이 대부분을 가로채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한두 해가 아니라, 95년 감면제도가 도입된 이후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민주화된 세상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나 싶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상당수 회사는 택시기사들에게 부가세 감면분을 한 푼도 지급하지 않고 있었다. 노동조합이 있는 일부 회사는 대체로 월 2만원 안팎을 주고 있었는데, 이 또한 제대로 지급하는 게 아니었다. 제대로 준다면 한 명에 월 5만~10만원을 줘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전국 택시회사가 95년부터 2002년 사이 감면받은 부가가치세는 6714억원이었는데, 그 가운데 적어도 5천억원 이상을 회사 쪽이 가로챈 것으로 추산됐다.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문제는 부실한 관리감독에 있었다. 택시회사들은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세금 감면분을 어떻게 썼는지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보고서는 아무렇게나 짜맞추면 되는 것이었다. 어떤 택시회사는 부가세 감면분을 급여에 포함시켜 줬다고 했고, 각종 복리후생 경비도 부가세 감면분에서 썼다고 보고했다. 이런저런 거짓 지급항목을 만들어 지급했다고 보고한 경우도 많았다. 잘못된 것이었으나 건설교통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눈감아 줬다.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택시기사가 태반이었다. 일부 택시기사들이 이를 문제삼았지만, 사업주가 처벌받기는커녕 문제삼은 이들만 일자리를 잃곤 했다.

택시 부가세 문제가 공론화된 것은 2004년 5월7일 정오교통 택시기사 조경식씨가 분신으로 이에 항의한 것이 계기가 됐다. 택시기사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결국 국회가 나섰다. 그해 말 국회는 조세특례제한법을 고쳐 택시 부가세 감면분은 택시기사들의 처우개선에 쓰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문제는 해결될 것처럼 보였다. 건설교통부는 부가세 감면분을 택시기사 개인에게 현금으로 지급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그것이 무용지물이란 게 곧 드러났다. 부가세 감면분 전액을 택시기사들에게 현금으로 지급하는 회사도 생겨났지만, 몇몇 회사에 그쳤다. 대부분의 택시회사는 여전히 부가세 감면분을 떼먹고 있다. 이를 둘러싼 노사간 갈등이 지금도 전국 택시사업장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2005년까지 전국의 법인택시 회사가 감면받은 부가세는 9천억원이 넘는다. 그 돈 대부분이 사실상 택시회사를 위한 보조금으로 쓰였다. 하지만 택시기사들의 처우는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 오랜 세월 세금 감면분을 가로채는 데 익숙한 택시 사업주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택시기사들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돌려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정부가 그것을 고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한번 도입된 세금 감면 제도는 없애기가 매우 어렵다. 한시적으로 도입했던 택시 부가세 감면 제도도 몇 차례 시한이 연장돼 2008년까지 적용된다. 택시 사업주들은 시한을 또 연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저마다 ‘서민’을 이야기하며, 서민을 위한 세금 감면 공약을 또 내놓고 있다. 택시 부가세 사례를 보면, 그런 공약이 정말 서민에게 혜택을 주게 될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택시 부가세 문제부터 해결해 보라! 그러면 믿을 수 있을 듯하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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