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곤/논설위원
아침햇발
대선이 열흘 남짓 남았다. 지금껏 나타난 대선 경쟁의 가장 큰 특징은 보수의 득세, 이명박 후보의 독주다. 유력 후보가 둘로 쪼개졌는데도, 보수성향 후보들의 지지율은 여론조사에서 60% 가까이 된다. 특히 이 후보는 40% 안팎의 지지율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비비케이 의혹’이 검찰에 의해 무혐의로 결론나면서 ‘보수 헤게모니’ 추세는 더욱 공고해졌다. 대선구도가 ‘이명박 대 반이명박’으로 재편되는 양상도 보인다.
보수 득세의 원인을 두고 그동안 ‘현 정권에 대한 실망감’, ‘고용 없는 저성장’, ‘진보개혁 세력의 무능’ 등 여러 분석이 나오더니, 급기야 ‘노망’, ‘미친 민심’이란 막말까지 불거졌다. 일부 경청할 만한 대목이 없는 건 아니지만 틀림없는 진단은 아닌 듯하다.
요즘의 보수 기울기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빚어내고 있는 ‘불안’에 있다. 결정적으로는 세칭 ‘민주개혁 정부’와 이를 아우르는 세력의 정치와 정책이, 불안의 고리를 충분히 풀어내 주지 못한 까닭에 있다.
실상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은 늘 일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자신이 속한 기업과 조직의 앞날마저 불투명하다. 여기에 노후·건강·집·자식 교육 등 걱정거리는 끝이 없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인들만 겪는 일이라곤 할 수 없지만 선진국들은 이런 사회적 위험을 높은 사회복지 지출, 사회보장 및 조세제도 등으로 어느 정도 해결한다. 하지만, 여전히 낮은 사회복지 지출과 미흡한 제도를 지니고 있는 우리 사회에선 불안과 걱정거리는 각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따지고 보면 국민의 불안과 선택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상당수 국민들이 지지하고 있는 보수 후보와 세력들이 이런 불안의 매듭을 속 시원히 풀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들이 내거는 핵심적 해법은‘높은 성장’이다. 하지만 목표 달성도 쉽지 않은데다, 승자 독식의 패러다임이다. 과실이 고루 돌아가지 않는 성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낳는데다, 정의롭지 않아 되려 불안을 더 키울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핵심과제는 불안의 수위를 어떻게 낮추고, 무엇으로 구조적 고리를 끊어 주느냐이다. 이런 면에서 지난 주말 국민대에서 열린 ‘시장국가인가, 복지국가인가’란 주제의 토론회는 뜻깊은 행사였다. 한국사회경제학회 등 다섯 단체에 속한 학자들이 모여 한국 사회의 진로를 진지하게 모색한 자리였다.
경제·노동·금융·산업·복지 등 우리 사회의 의제를 총망라해 논의가 이뤄졌지만, 눈길을 끈 점은 진보진영 학자들이 대거 대안적 의미의 복지국가 담론에 본격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기실 우리 사회의 ‘민주개혁세력’과 지식인들은 ‘민주주의’ 이후 국민과 소통할 뚜렷한 담론을 내놓지 못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하고 내부를 응집할 가치조차 공유하지도 체계화하지도 못했다. 이번 대선에서 보여준 이들의 지리멸렬한 모습은 한편에선 담론 공유의 실패에서 비롯한 바도 크다. ‘국민과 공유하고 자기확신이 담긴 담론’이 생산되고 공유되지 않고선 가고자 하는 길로 온전히 가기 어렵다.
영국의 복지국가 도입은 1945년 노동당 집권 이전에 ‘베버리지 보고서’가 있기에 가능했다. 네 차례의 연속 패배 이후 토니 블레어가 1997년 집권하는데도 준비된 청사진인 ‘사회정의:국가 쇄신전략’이 있었다. 2007년 대선, 보수와 진보 양쪽은 지금 국민 다수를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인 ‘불안의 중층적 구조’를 끊어줄 어떤 대안 담론을 지니고 있는가? 이창곤/논설위원 goni@hani.co.kr
영국의 복지국가 도입은 1945년 노동당 집권 이전에 ‘베버리지 보고서’가 있기에 가능했다. 네 차례의 연속 패배 이후 토니 블레어가 1997년 집권하는데도 준비된 청사진인 ‘사회정의:국가 쇄신전략’이 있었다. 2007년 대선, 보수와 진보 양쪽은 지금 국민 다수를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인 ‘불안의 중층적 구조’를 끊어줄 어떤 대안 담론을 지니고 있는가? 이창곤/논설위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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