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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새 정부는 누구를 배반할 것인가 / 정남구

등록 2007-12-27 19:14

정남구 논설위원
정남구 논설위원
아침햇발
김대중 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주택 경기를 부양하고, ‘개도 물고 다닐 만큼’ 신용카드를 뿌려대 내수를 살리지 않았다면 노무현 정부의 집권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책이 가져온 후유증은 참여정부를 침몰시키는 큰 원인이 되었으니, 역시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4백만명을 넘어선 신용불량자, 집값 폭등에 절망한 사람들은 집권세력에 등을 돌렸다. 그뿐인가? 집값이 오른 사람들조차 뒤늦게 채택한 집값 안정 정책으로 늘어난 세금에 분노를 터뜨렸고, 집값이 덜 오르거나 내 집 마련에 막차를 탄 사람들까지 불만의 대열에 줄을 섰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은 그들의 ‘분노’를 잘 조직함으로써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분노’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유권자들의 기대는 정반대 방향을 향해 있다. 한쪽은 집값을 안정시키라고 하지만, 다른 한쪽은 집값을 올리라고 한다. 이들을 두루 만족시키기는 하느님이라도 쉽지 않다. 더욱 골치 아픈 것은 새 정부가 물려받을 것이 권력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위험 수위로 폭등한 집값에다, 엄청나게 불어난 가계부채, 게다가 심상찮은 세계경제 상황까지 함께 인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정권을 인수할 이들은 어제 미국의 신용평가기관 애스앤피(S&P)가 발표한 10월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를 눈여겨봐야 한다. 20개 도시 가격지수는 1년 전에 견줘 6.1% 떨어졌다. 10% 이상 떨어진 도시가 6곳이다. 미국 집값은 1997년부터 연 4% 넘게 상승세를 보였다. 상승률은 해마다 높아져 2005년에는 15%를 넘겼다.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 정책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물가상승에 맞서 금리를 본격적으로 올리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집값 하락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로 이어져 세계 금융시장을 흔들고 있다. 미국 연준은 다시 금리를 내려 이에 대처하고 있으나, 물가라는 복병은 금리를 계속 내리기 어렵게 한다. 딜레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내년에도 미국 집값 하락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새 정부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또한 미국과 매우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오랜 세월 저금리 정책을 펴왔고, 그에 맞춰 집값은 폭등했다. 참여정부는 강력한 대출 규제로 집값 상승세를 멈추게 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하지만 이미 집값은 뛸 대로 뛰었고, 가계부채도 감당하기에 벅찰 정도로 늘어나버렸다. 그런 가운데 최근 시장 금리의 상승세는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들에게 엄청난 압박이 되고 있다.

새 정부는 이제 몇 가지 정책을 바꿀 것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길은 물론 없다. 문제는 정책 변경의 영향이다. 재건축 규제완화는 일부 시장에만 영향을 끼칠 것이다. 종합부동산세를 손보는 것은 십년을 내다보고 마련한 세제개혁을 흔드는 것인 만큼 파급효과가 좀더 클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통화정책이다. 금리 인하를 비롯한 통화확대 정책 요구는 머잖아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경기가 나빠지면 압력은 더 커질 것이다. 새 정부가 그런 요구를 따른다면 집값은 다시 오를 수도 있다. 그것은 집 없는 사람들의 불만을 폭발시킬 뿐 아니라, 뒷날 후유증을 몇 배로 키우게 될 것이다. 돈을 풀면서도 물가를 덜 자극하려면 임금을 올려 달라는 노동자들부터 짓눌러야 한다.

야당으로서 선거전을 벌일 때와 집권 뒤는 다르다. 새 정부는 조만간 어느 쪽인가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선택에 앞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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