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곤/논설위원
아침햇발
다시 새해다. 황금돼지 해가 저물고 쥐의 해가 다가왔다. 숱한 이들이 해돋이에 나섰다. 정동진, 포항 호미곶, 울산 간절곶, 이름만 외도 가슴 설레는 동해의 일출명소들에는 전날부터 해맞이 인파로 하루종일 북적였다. 새해 첫날 아침엔 북한산·관악산·아차산 등 도심의 산머리에도 사람들로 가득 찰 것이다.
해는 가름이 없다. 어디서 솟든 오직 하나다. 부자든 가난하든, 지위가 높든 낮든, 잘났든 못났든 구분짓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같은 모습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해를 우러러보는 까닭은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다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마다 꿈과 희망을 가슴에 새겼을 것이다.
세밑에 찾은 서울 서초구 서초4동 ‘사랑의 교회’ 들머리, 난데없는 네모꼴의 작은 천막이 쳐져 있다. 화려한 교회당과 대조되는 초라한 천막 지붕에도 햇살은 어김없이 눈부셨다. 하지만 천막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네 명의 이랜드 노조원들이 낯선 방문객에게 쏟아낸 말들은 왜 이리 아득한가.
“우리들에겐 ‘새해’가 없어요”. 정해년의 마지막 일요일을 좁고 을씨년스런 천막 안에서 보내야만 했던, 언제까지 이 천막농성을 계속해야 할지도 기약 없는 그들에게 새해는 물리적 시간의 흐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새해맞이의 소감을 거듭 묻자 “아무런 느낌이 없다”며 허탈해하면서도 웃음만은 잃지 않는다.
2008년 1월1일은 파업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193일째다.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벌인 회사 쪽의 외주화에 반발해 지난여름 반팔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다. “곧 끝나겠지 했던” 여름 날이 영하의 새해로 바뀌었지만, ‘이랜드 사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80만∼90만원의 월급도 기꺼워하며 살아온 그들이지만, 그마저 여섯달 동안 한푼도 없었다.
노조로부터 그동안 100만원의 생계비를 지원받았지만 살림살이에는 턱도 없는 돈이다. “적금 깨고, 보험 깨고, 마이너스 통장 만들고 카드론 대출하며 버티고 있다”는 그들의 상당수는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다. 그래서 “어서 빨리 작업장으로 돌아가고 싶”으면서도 “여기서 무작정 받아들이거나 그냥 멈출 수도 없”단다.
왜 교회 앞에서 천막농성인가? “매장점거·봉쇄투쟁·불매운동 등 해볼 건 다 해봤는데도 꿈쩍하지 않는 이랜드그룹 주인이자 사랑의 교회 장로인 박성수 회장에게, 그리고 교회에 마지막으로 사랑의 호소를 하기 위해서”란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온 것은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였다. 성탄을 앞두고 한국 교회가 이 땅에 던진 메시지도 ‘나눔’이었다. “박성수 회장이 진정 하나님을 ‘섬긴’다면 호소에 답할 것”이란 막연한 믿음에 기대어 이랜드 여성조합원들은 새해 첫 아침을 천막에서 맞는다.
천막 안 해맞이는 이랜드뿐이 아니다. 무려 22개월째 파업 중인 케이티엑스의 여승무원들도 서울역 광장의 천막 안에서 곡기마저 끊은 채 새해를 맞는다.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 다섯 명은 새해 전날 서울 시내 폐쇄회로(CCTV) 철탑에 올라 시위를 벌이다 각기 경찰서와 병원에서 새해를 맞을 것 같다.
고용불안과 차별, 정부와 사회의 홀대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무자년은 희망과 꿈이 될 수 있을까? 더욱이 올 7월부터는 100인 이상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에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비정규직법이 적용된다. 2000년 이후 취업자 10명 중 8명이 중소영세업체에서 일하고,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보호와 차별시정을 위한 법이 ‘칼’이 돼 더 많은 비정규직의 목을 노릴 수도 있다. ‘88만원 세대’의 승자독식 무한경쟁에는 지금 브레이크가 없다. 이러한데도 새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에는 구체적인 언급조차 없었고, 인수위원회의 핵심과제에도 비정규직 문제는 뒷전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인수위 그리고 우리 사회는 분명 알아야 한다. 세계 사상 유례없는 861만명이란 비정규직 노동자, 이들을 내팽개치고선 선진화도, 미래도, 진보도 없음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는 바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법일 것이다. 이창곤/논설위원 goni@hani.co.kr
고용불안과 차별, 정부와 사회의 홀대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무자년은 희망과 꿈이 될 수 있을까? 더욱이 올 7월부터는 100인 이상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에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비정규직법이 적용된다. 2000년 이후 취업자 10명 중 8명이 중소영세업체에서 일하고,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 보호와 차별시정을 위한 법이 ‘칼’이 돼 더 많은 비정규직의 목을 노릴 수도 있다. ‘88만원 세대’의 승자독식 무한경쟁에는 지금 브레이크가 없다. 이러한데도 새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에는 구체적인 언급조차 없었고, 인수위원회의 핵심과제에도 비정규직 문제는 뒷전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인수위 그리고 우리 사회는 분명 알아야 한다. 세계 사상 유례없는 861만명이란 비정규직 노동자, 이들을 내팽개치고선 선진화도, 미래도, 진보도 없음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는 바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법일 것이다. 이창곤/논설위원 gon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