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논설위원
아침햇발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1월 소비자전망지수는 새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얼마나 큰지 잘 보여준다. 6개월 전에 견줘 현재의 경기나 생활형편, 소비지출이 어떤지를 평가한 지수는 11개월 만의 최저치였다. 그런데, 6개월 뒤의 기대를 반영한 지수는 5년5개월 만의 최고치였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는 미국의 경기 후퇴, 국내로 번진 물가 급등과 경상수지 적자 등 우울한 소식을 다 덮을 정도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하나둘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대기업 주주들은 기대가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했을 것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첫소리로 “세금을 줄이겠다”고 했다. 정부는 최고 25%인 법인세율을 20%까지 낮추겠다고 한다.
2006년 35만여 법인기업이 낸 법인세는 26조5천억원이었다. 5년 뒤가 아니라, 지금 법인세율을 5% 포인트 내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법인기업들은 5조3천억원의 세금을 덜 내고, 그만큼 세후 순이익이 늘어난다. 세율 인하는 영구적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기업들은 해마다 그만큼의 이익 증가를 누린다. 할인율을 연 5%로 하여 미래에 감면받는 세금을 현재가치로 모두 환산해 보면, 법인세율 인하로 기업들이 받을 혜택은 무려 100조원에 이른다.
그 선물을 받을 사람의 명단을 꼽아보자. 35만이라는 법인기업 숫자는 별 의미가 없다. 2006년 법인세의 60%에 이르는 15조7천억원은 260개 대기업이 낸 까닭이다. 과표 100억원이 넘는 1200개 기업으로 범위를 넓히면 이들 기업이 4분의 3을 냈다. 세율 인하 혜택은 당연히 이들 기업에 집중된다. 법인세율 인하 혜택 100조원 가운데, 수익 상위 1200개 기업에 돌아갈 몫은 75조원이다.
새 정부 경제팀은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세금을 깎는 것”이라고 한다. 그럴듯해 보인다. 세금이 줄어들면 기업의 투자여력이 커지고, 신규 투자에 따른 기대수익률도 높아져 투자가 좀더 일어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여러 연구결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법인세율 인하가 투자를 활성화하는 효과는 아주 작다. 상장 대기업들이 자금여력이 없어 투자에 소극적인 게 아님을 모르는 이는 없다. 법인세율 인하는 새로운 투자를 유인하기보다는, 이미 이뤄진 투자에 대해 사후 보상 성격이 훨씬 짙다. 돈잔치일 뿐이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지분은 3분의 1이 외국인투자가의 손에 있고, 재벌 총수와 친인척이 8.7%를 갖고 있다. 세금 감면으로 기업 수익이 늘면, 배당이 늘거나 주가가 오를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소비를 늘리지도 않는다.
외국 정부가 앞다퉈 법인세를 내리고 있으니, 우리도 국내 기업의 외국 탈출을 막고 외자를 유치하려면 법인세를 앞장서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길게 보면, 피하기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은 홍콩, 싱가포르 같은 나라보다는 조금 높지만, 경쟁국에 견줘 결코 높지 않다. 법인세율 5% 포인트 인하는 기업의 자기자본 이익률을 0.5%도 끌어올리지 못한다. 그 정도 효과를 보겠다고 우리나라로 들어올 외국기업이 몇이나 되겠는가.
정부는 세금을 계속 줄여갈 모양이다. 6억원 이상 집을 한 채 가진 사람의 양도소득세를 낮추기로 했고, 종합부동산세도 손볼 예정이다. 그 뒤에 올 것은 뻔하다. 복지장관이 ‘복지병’을 거론할 정도니, 복지 지출은 당연히 줄일 것이다. 그래도 재정이 부족하면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부담을 지우거나 후손들에게 미룰 것이다. 이건 도둑질이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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