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논설위원
아침햇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갈수록 꼬이고 있다. 정부 당국자 간의 대화가 단절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민간 교류도 무산되거나 연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북한의 대남 비방 수준도 2000년 6·15 정상회담 이전으로 되돌아가 ‘역도’, ‘남조선 괴뢰군’이라는 용어가 다시 등장했다. 개성공단 사업 확대와 핵 문제를 연계시킨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발언과 유사시 선제공격을 시사한 김태영 합참의장의 말 등 북한을 자극할 만한 일이 있기는 했지만, 최근의 북한 태도는 강도가 유례없이 세다.
우리 정부가 예상했거나 의도했던 상황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정책 책임자들이 공·사석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한결같이 남북관계의 진전을 희망하고 있다. 며칠 전 이 대통령이 종교지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 대표적이다. 이 대통령은 “서로 민족끼리 가슴 열고 만나야 한다. 다른 나라도 돕는데 동족끼리 돕는 것은 당연하다. 올해 안에 일본 총리와도 5번 만나는데 내가 김정일 위원장과 못 만날 이유가 뭐가 있느냐. 필요하면 언제든지 만나겠다”고 말했다. 보수세력이 매우 싫어하는 “민족끼리”라는 용어까지 사용했다. 그만큼 대화하자는 메시지가 강하다.
그런데 왜 남북관계는 자꾸 꼬여 가는 걸까. 무엇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 자신이 내세운 실용주의를 제쳐두고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에만 애쓴 탓이다. 그동안 해오던 북한과의 여러 사업이나 교류 협력을 계속 진행하면서 ‘핵을 버리면 이런저런 인센티브를 더 주겠다’고 했으면 될 텐데, 핵을 버려야 협력하겠다고 했으니 북이 핵을 완전히 버리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상태가 돼 버렸다.
전 정권과 차별화하는 것은 현실 정치에서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역사는 이명박 정부가 남북정책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얼마나 달랐느냐를 기록하기보다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 통일에 어떤 구실을 했느냐를 기록할 뿐이다.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미국 네오콘의 철학이 아니라 북한과 잘 지내겠다는 의지가 진정 있다면, 우선 6·15 공동선언, 10·4 정상 합의의 계승을 선언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남북관계에서 1991년의 남북 기본합의서를 새삼스럽게 끄집어냈지만, 6·15나 10·4 선언은 기본합의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보수적인 정형근 의원조차 두 정상회담의 정신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남북 총리회담 개최를 제의하는 것이 하나의 현실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또 진정 상호 교류를 원한다면 상대를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남북 연락사무소 설치 문제처럼 상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안을 사전에 아무런 협의도 하지 않은 채 불쑥 제안하는 것은 대화 의지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오히려 북쪽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 쉽다. ‘비핵·개방 3000’ 공약도 마찬가지다. 우리 쪽에서는 선의로 도와주겠다는 것이지만, 북한 처지에서 보면 지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무슨 시혜적인 태도냐며 처음에는 강하게 거부반응을 보였던 북한이다.
쌀과 비료 등 인도주의적인 지원 문제에서도 발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정해놓고도 북쪽에서 먼저 달라고 요청해야 주겠다고 미루는 것은 옹졸하다. 그런 자존심 다툼을 하고 있기에는 당장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이 너무 많다. 관계가 꽉 막혔을 때는 쓸데없는 조건을 버리고 먼저 손을 내밀어 행동하는 것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김종철 논설위원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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