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주 언론인
김선주칼럼
‘소 팔아 쇠고기 사먹기’, 속담에 있는 말이다. 쇠고기를 사먹으려고 소를 팔아치우는 어리석은 짓을 말한다. 농사를 도맡아 해주고, 요긴한 운송수단이고, 죽어서는 고기를 남겨주는 소는 우리 조상에겐 자식만큼 귀중한 재산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이명박 정부가 하는 짓이 꼭 우리 자녀들, 미래의 재산을 팔아서 쇠고기 사먹는 꼴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 국민도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그럴싸한 말이다. 청와대에선 날마다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 아이들이 학교급식을 통해서 질 나쁘고 값싼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와 그 부산물로 만든 가공식품을 무차별적으로 먹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둘 드러나는 협상과정의 뒷이야기를 들어보면 실무자들이 협상문구도 살펴보지 않고 대통령 방미라는 시한에 쫓겨서 서두른 것이 확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라면 최소한 쟁점이 무엇인지 왜 쇠고기 협상이 지연되고 있었는지 정도는 챙길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에 쇠고기를 팔고 싶어하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질 좋은 쇠고기를 값싸게 제공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자국민을 위해서, 자국의 축산농가를 위해서다. 미국의 축산농가에서 소를 잡고 나면 그 절반의 부산물은 태워 버렸다고 한다. 그들은 내장이나 사골 따위를 알뜰히 챙겨 먹는 한국 시장에 오랫동안 눈독을 들여 왔다. 쓰레기 처리 비용도 들지 않고 그것을 팔 수 있는 한국이라는 시장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고, 그것을 서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협상에 진전이 없었던 것이다.
‘엠비노믹스’가 추구하는 것은 이윤의 최대화다. 공기업 공공기관 할 것 없이 모두 민영화·영리화하자고 한다. 철도·에너지·학교·병원·문화시설까지 모두 이윤추구를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이윤을 최대로 추구하려고 골치 아프고 비용이 많이 드는 기관들을 민간에 넘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민간에게, 학교 급식업자에게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지 말고 양심적으로 운영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도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 질보다는 값을 우선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해서는 자녀들이 부모 세대보다 더욱 단호하다. 촛불집회도 어찌 보면 청소년들이 주도하는 것 같다. 그것은 학교급식에 대한 철저한 불신 때문이다. 학교급식과 군대급식에 질린 우리집 아이들도 다른 문제에는 심드렁한 편인데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평소 안 보던 토론 프로그램도 열심히 보면서 핏대를 올린다. 일흔에 가까운 대통령이 365일 텔레비전에 나와서 30개월이 넘은 미국산 소의 척수와 내장을 참기름에 찍어 먹는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서 청소년들은 안심하지 않는다. 그걸 당신 손자들에게 먹이십시오. 이게 그들의 대답이다.
하도 답답해서 이 정부의 ‘관계자’ 비슷한 사람에게 물었다. 재협상의 여지는 없는 겁니까? 기차는 이미 떠난 것 아닙니까. 돌아온 대답이다. 그렇다면 똥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는 건가. 절차상의, 협상과정의 잘못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일정대로 간다는 말인지 …. 부처님 오신 날 아침, 불가에선 왜 살생을 금하고 고기를 먹지 말라 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본다. 소는 이제 인간의 친구가 아니고 생명도 아니다. 오로지 먹이일 뿐이다. 소를 생명체로 보지 않고 먹이로만 본 오늘 하루 부처님의 대자대비를 구한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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