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호 논설위원
아침햇발
큰일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 정부를 두고 하는 걱정들이다. 심한 말도 많다. 대선에서 그를 찍었다는 사람들이 그런 욕을 한다. 대놓고 그를 편들던 보수신문들까지 그의 잘못을 지적하고, 질타하고, 훈계하기 시작했다. 민심의 거대한 이반을 외면 못한 탓이겠다. 지금 ‘대통령 이명박’은 우리 공동체의 걱정거리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먼저 그를 탓할 수밖에 없다. 사실 대통령직 인수위부터 넉 달 남짓 그가 보인 일솜씨는 기대 밖이었다. 온전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인사 난맥상이 그랬고, 냈다가 거두기를 거듭한 어설픈 정책들이 또 그랬다. 정부 부처들을 조정해 효율적으로 일을 해내는 지휘능력도, 통합과 지지를 이끌어내는 정치력도 보이지 못했다. 오죽하면 집권 초의 여당에서 반발과 한탄, 갈라지는 소리만 들리는가. 배려 없는 돌출 발언과 승자독식의 오만으로 논란과 갈등을 부르는 일도 잦다. 이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대통령의 능력에 해당된다면, 그는 이미 낙제점을 받았다. 취임 석 달도 안 된 대통령에게 20%대의 참혹한 지지율로 답한, 바로 그 성적표다. ‘그래도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할 사람’이라는 기대를 배신당한 실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고 해서 고소해할 일도 아니다. 몇 달 안 되는 동안 많은 것이 망가졌다. 교육과 남북관계가 대표적이다. 쌓기는 오래 걸려도 허무는 건 금방이다. 망가진 교육현장의 아우성이 10대들의 촛불시위다. 동북아의 ‘왕따’를 걱정해야 할 지경으로 내몬 외교와 대북정책의 헛걸음은 또 얼마나 큰 비용 부담으로 돌아올까. 정부와 언론 등 공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도 이번 광우병 논란으로 더 커졌다. 그런 부담들이 지금 정부에 그치진 않을 게다. 나라 전체의 병은 너와 나를 가리지 않는다.
그는 이런 걱정들을 알까. 아닌 것 같다. 며칠 전 그를 만난 한 의원은 “대통령이 지금 사태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지 않더라”고 전했다.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신 그는 홍보 탓을 많이 했다고 한다. 홍보는 일방적 설득일 뿐, 국민의 말을 듣는 쌍방향 소통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 곧 이 정부가 잘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깨진 것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는 듯하다. 측근도 그에게서 “인식의 괴리”를 느낀다고 했다. 대통령이 아랑곳 않고 갈 길을 가겠다는 의지가 굳다니, 그 괴리는 더 커질 게다. 고집은 고립을 부른다.
일이 여기에 이른 게 그 한 사람 탓일까. 따지자면 지난 대선은 이명박 개인의 승리가 아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범보수 진영이 후보의 온갖 흠을 무릅쓰고 힘을 모아 이룬 결과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범보수는 그를 과거의 제왕적 대통령처럼 떠받들기만 했다. 그도 그렇게 착각했을 게다. 두루 최고의 인재를 찾는 대신 능력이 의심되는 ‘이명박 사람’들을 대거 기용한 게 그 결과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만 되돌리면 만사형통이라는 착각도 범보수가 키웠다. 노무현 정부와 정반대면 된다고 부추긴 탓에, 세밀한 정책 검토와 실행 준비,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가 지금 허둥대는 모습들이다. ‘좌파-우파’의 낡은 구도로 세상을 재단한 탓에, 지금의 민심 이반까지 십수년 전의 낡은 잣대로 바라보게 했다. 그 결과가 군사정권 시대의 낡은 칼을 인터넷에 들이대는, 웃지 못할 행태다.
제 힘만 믿고 고집불통인 평안북도 벽동·창성의 소를 벽창우라 했다. 벽창우는 주인도 다루기 힘들다. 더 늦기 전에 주인을 섬기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전면 쇄신과 새출발이 불가피하다. 당장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부터 팔 걷고 나서라.
여현호 논설위원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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