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삶의창
어떻게 이처럼 어리석은 정부가 있을까. 대다수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도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정녕 믿고 있는 것일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고시를 기어이 강행했다는 뉴스를 듣는 순간 나는 무엇보다도 이 정부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원래 나는 정부를 믿는 사람도, 국가를 인정하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오늘날 국가가 갖고 있는 막강한 권능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조금이라도 덕정(德政)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져주고, 최소한의 민주주의 원칙을 지켜주기를 염원해 왔다. 왜냐하면 이 정부가 소위 인수위 시절부터 거침없이 보여준 난폭한 방식을 그대로 계속한다면 그때 벌어질 사태들이 너무나 두렵기 때문이었다. 대운하를 건설한답시고 이 나라 자연과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파괴를 초래하고, 자유무역이니 민영화니 규제철폐라는 이름으로 농민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끝없이 희생시킨다면, 설령 앞으로 5년 뒤에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저질러진 손상의 정도가 너무나 깊어서 회복이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기는 도덕적 이성을 심각하게 결여하고 있는 정치집단에 덕(德)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애당초 무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쁜 짓을 하더라도 좀 세련되게 할 수는 있지 않을까. 현대국가란 본질적으로 소수 특권층의 기득권을 보호·확대하기 위한 폭압장치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국가가 국가로서 기능하려면 최소한의 정당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아니, 정당성을 갖고 있다는 외양이라도 갖추어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이 정부는 사상이나 이념의 문제도 아니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킨다는 국가존립의 가장 기초적인 명분마저 내팽개침으로써 스스로 국가의 정당성을 포기해 버렸다. 이럴 바에는 왜 국가가 필요하며, 왜 국민이 세금을 내고,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하는가 라고 묻지 않을 수 없는 사태를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그러나 딱하게도 정부는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미국산 쇠고기가 싫은 사람은 사먹지 않으면 될 게 아닌가” 라고 일개 생활인이 말했다면 그것은 크게 탓할 일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말은 국가수반이라는 사람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이라는 것을 지금 이명박 정부가 뒤늦게나마 깨달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것을 깨달았다면 이처럼 무모하게 쇠고기 수입 고시를 서둘러 강행했을 리 없는 것이다.
하기는 쇠고기 문제 처리 방식도 “모든 것은 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이 정부의 일관된 ‘실용주의’에 의거한 것인지 모른다. 그리하여 ‘경제’라는 물신을 위해서는 꺼림칙한 쇠고기쯤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왜 여론이 이처럼 들끓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국민이라는 인간들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기도 할 것이다. 돈이 된다면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성공한 그 방식 때문에 지지를 받았던 것인데, 지금은 바로 그 방식이 비판받고 있는 게 아닌가. 자기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는데 사람들이 왜 이럴까, 야속한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어떤 엉터리 국가일지언정 무릇 국가는, 민중에 대한 수탈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민중의 복리와 건강을 챙겨주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국가의 공익적 기능이라는 것이다. 국가가 이러한 기초적인 책무를 방기하고, 모든 것을 시장논리에 맡겨두고 계속하여 민중의 요구를 무시한다면, 그때는 국가가 있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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