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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그리운 ‘물의 나라’ / 박범신

등록 2008-06-13 19:32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삶의창
티베트 사람들은 우주가 다섯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첫째는 땅이고 둘째는 물, 셋째는 불, 넷째는 바람, 다섯째는 허공이다. 다섯 가지 원소가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고 서로 균형을 맞추어 짱짱하게 붙들고 있는 것이 이른바 대우주라는 것이다.

사람은 흔히 소우주라고 부른다.

땅은 육신을 뜻한다. 그것은 형체를 이루고 도구로 활용되며 감각의 안테나로 쓰인다. 물은 이를테면 강과 같아서 온몸의 기관들을 어머니처럼 쓰다듬고 고르고 맺어지도록 한다. 그것과 대비되는 불은 보일러와 흡사하다. 심장은 보일러의 기름을 펌프질하는 곳이고 핏줄을 통해 일정한 불의 기온, 곧 체온을 전달시키고 유지되도록 돕는다. 그리고 바람은 곧 숨이고 허공은 바람이 흘러다니는 길이다. 안과 밖, 소우주와 대우주의 소통도 바로 허공인 몸의 여러 구멍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건강의 개념은 간단명료하다.

위의 5원소가 유기적으로 맺어져 균형을 갖춘 상태가 최상의 건강이다. 이것들이 균형을 잃고 어느 한 가지든 넘치거나 모자라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다.

사회라고 뭐 다르겠는가.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란 이 5원소가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가 개개인의 삶을 담는 유기체적인 그릇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릇이 깨졌을 때 개인의 삶 또한 균형을 잃고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흔히 말하는 ‘삶의 질’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개인과 사회가 드러내 보여주는 5원소의 균형도와 그 상관관계를 종합해서 산출한 것일 터이다.

‘기업친화도 9위, 삶의 질 86위.’


신문에서 이런 내용의 기사를 본다. 어디 어디에서 세계의 대도시를 표본조사한 결과 사업하기 좋은 도시로 서울은 경제대국답게 9위를 차지했는데 ‘삶의 질’에선 86위를 기록했다는 기사다. 9위와 86위 사이의 편차가 너무 커서 그 단층이 아주 가파르고 아슬아슬해 보인다. 그리고 동시에, 그 아슬아슬한 벼랑에 나와 내 이웃들의 삶이 역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것이 눈앞에 환히 떠오른다.

우리 사회의 무엇이 문제인가.

해답은 뻔하다. 지난 반세기, 그리고 지금, 우리는 오직 불(火)만 키워왔다는 것이다. 예전에 내가 쓴 소설제목처럼 오로지 ‘불의 나라’로 키우느라 ‘물의 나라’ ‘바람의 나라’ ‘허공의 나라’로 만들지 못한 죄가 크다. 불을 너무 키워 화마(火魔) 속에 우리네 삶이 들어 있으니 ‘삶의 질’이야 논외가 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정부가 오류를 범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화마에 몸도 맘도 타고 있는데, 물은 고사하고 거기다가 또 ‘성장’이란 이름으로 기름을 붓고 자꾸 라이터를 켜대니 사람이 어찌 살겠는가.

요즘의 사태는 정치, 경제 문제가 아니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정파적인 논쟁도 참 우습다. 당장 필요한 것은 지도그룹이 좀더 깊고 서늘한 문화적 관점을 갖는 일이다. 문화는 물이고 바람이고 허공이고 흙이고 불이고, 그 모든 것의 아름다운 균형이다. 불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해법은 없다. 단순한 ‘쇠고기’문제가 아니다. 촛불‘문화제’라고 하지 않는가.

생명은 본질적으로 ‘물’에서 나오고 ‘바람’의 숨으로 유지된다. 이미 9위로 평가된 서울의 기업환경을 더 상위권으로 올리고 86위 ‘삶의 질’은 더 하위권으로 내려도 상관없다는 성장 제일주의는 오직 ‘불길’만 키울 뿐이다. 사회는 물론이고 우리들 개개인조차 이미 불덩어리가 된 지 오래다. 반세기 넘게 키워온 화마로 도대체 숨을 쉴 수가 없다. ‘촛불’이 바라고 외치는 것은 아주 근원적인 것이다. 문화의 깊이로 읽어내야 하는.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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