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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이중섭의 소 그림이 맛있는 이유 / 손철주

등록 2008-06-20 20:07

손철주  학고재 주간
손철주 학고재 주간
삶의창
잇속 챙기려는 작자들이 농간을 부리는 통에 이중섭 그림이 한동안 혼구멍이 났다. 가짜가 진짜로 행세하고 섭치가 알천으로 둔갑했기 때문인데, 미술시장에서 애먼 그림이 매기가 떨어지고 이중섭의 명성을 홀시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가짜 그림이 활개 쳐 세상을 속일지언정 그 작가의 삶과 작품이 덩달아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은 어처구니없다. 이중섭은 훼예포폄에 아랑곳 않는 국민화가다. 가짜는 진짜의 우뚝함을 넘보는 까치발이고, 까치발로는 오래 못 버틴다.

나는 이중섭의 소 그림이 맛있어 군침을 흘린다. 그의 대표작 ‘황소’는 힘이 들어간 퉁방울눈에 콧구멍은 벌름벌름, 입은 함지박처럼 벌리고 울부짖는다. 뿔따구 난 소의 대가리를 클로즈업한 그림인데, 가슴은 시근벌떡거리고 아랫도리는 땅을 박차고 일어나는 품세일시 안 보여도 훤하다. 아랫니가 두 개 나 있다. 30개월령 미만의 소다. 볼살이 올라 육질이 팽팽하다. 또다른 그림 ‘흰 소’는 뼈와 힘줄로 묘사한 우리 토종의 진경이다. 소의 부위별 조직이 해부도를 능가할 정도로 눈에 선하다. 이는 잡는 가축마다 긍경에 닿았다는, <장자>에 나오는 전설의 칼잡이 포정이 아닌 담에야 불가한 통찰이다. 이중섭이 백정 출신이 아니고 정육점을 연 적도 없는데 이런 그림을 그렸다는 게 도무지 믿기 어렵다.

‘흰 소’를 바짝 들여다보자. 목심의 주름은 치밀하고 지방이 적당해 스테이크로 먹기 좋고, 등심과 채끝으로 이어지는 부위는 결이 고운데다 비육이 알맞아 구이로 제격이다. 마블은 환상일 것이고 치마살의 풍미야 두말할 나위 없겠다. 늑골은 숫자대로 다 그리지 않았지만 앞다리와 설도의 생김새로 보건대 탕이든 찜이든 구이든 혀에 녹아들 상등품이다. 우둔은 장조림으로 사태는 스튜로 해먹기에 최적의 상태다. 바짝 치켜든 쇠꼬리와 올라붙은 쇠불알은 시식용이라기보다 수컷의 위용을 뻐기려 한 이중섭의 속내일 성싶다.

어디 맛뿐이랴. 이중섭의 소는 이 땅에서 기른 가축의 씩씩한 성정을 드러낸다. 1954년 봄 이중섭은 뉴욕 현대미술관에 제 작품이 소장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들이 앞다퉈 덕담을 건넸다. 착해빠진 이중섭은 유난치 않게 응대했다. “내 그림이 비행기를 타겠네.” 이중섭을 ‘순수한 어린애’로 이르거나 ‘성자’로 비유하는 친지도 있다. 그런 그가 화를 내는 일이 생겼다. 55년 대구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다. 전시에 도움을 준 미국인 학자가 소 그림을 칭찬했다. “중섭의 소는 스페인의 투우처럼 박력 있다.” 이 말을 들은 이중섭이 눈물을 글썽이며 분을 참지 못했다는 것이 동석한 화가들의 증언이다. 그의 소는 역동성이 화면을 뛰쳐나올 듯한 게 맞다. 그런데 왜 골이 났을까. 그는 반박했다. “내 소는 한우란 말이야!”

이중섭 홀로 ‘지상에 머물다 간 천사’는 아니다. 네덜란드의 반 고흐가 버금가는 칭호를 들었다. 반 고흐의 초기작 ‘누워 있는 소’는 최근 한국에서 외국 미술품으로 최고가에 낙찰됐다. 무려 29억5천만원이다. 그의 소는 털썩 주저앉았다. 시쳇말로 ‘다우너’다. 우설은 새빨간데 이빨이 안 보여 나이를 모르겠다. 암소라서 살은 부드럽겠다. 이중섭의 ‘황소’나 ‘흰 소’가 얼마에 호가되는지 경매회사에 물어봤다. 둘 다 30억∼50억원은 좋이 넘는단다. ‘누워 있는 소’보다 비싸다는 얘기다. 병풍에 그린 닭이 홰를 치고 울지 않듯이 이중섭의 소가 식탁에 오를 일은 물론 없다. 풀 뜯어 먹고 자란 한우는 지게미와 쌀겨를 나눠 먹은 아내만큼 고맙고 도탑다. 비싸도 좋다 한우야, 내 지갑이 거덜나게 먹어주마.

손철주 학고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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