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삶의창
‘추가협상’이라는 것은 공허한 말일 뿐, 광우병 우려를 씻어줄 단하나의 실질적인 개선 조치도 없이 정부는 어이없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기정사실로 만들어 버렸다. 대통령이나 관계 공무원이나 이 부실하기 짝이 없는 ‘협상’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의혹과 질문에 대하여 한결같이 “미국을 믿어야 한다”고 답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도대체 미국의 누구를 믿으란 말인가?”라고 물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미국이라고 해서 단일한 미국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한국의 대통령이나 관료들이 “믿어야 한다”고 하는 그 미국은 미국 내에서도 우리가 알기에 가장 신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장 위험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국 안이든 바깥이든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가 어떻게 희생되든, 생태계가 어떻게 망가지든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일관되게 드러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쇠고기 문제 자체만 보더라도 그렇다. 온갖 번잡스러운 이야기를 떠나서 핵심을 들여다보면 이것은 사실 너무나 간단한 문제이다. 즉,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동물성 사료를 초식동물인 소한테 먹이고 있는 관행을 근절시키고, 그런 다음 지금 당장 동물성 사료를 금지하더라도 잠복기가 있으므로 일정기간 광우병 전수검사를 실시하면 모든 게 간단히 풀리는 문제인 것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것은 인간광우병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지극히 당연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 정부와 축산업자가 이 기초적인 조치를 거부한다는 데 있고, 무엇 때문인지 한국 정부가 이러한 미국인들의 비상식적인 입장에 아무 비판 없이 동조하고 있다는 데 있다.
결국 근본문제는 이윤획득을 위해서는 타자의 생명이나 건강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광적인 탐욕에 있음이 분명하다. 광우병 전수검사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축산업자들은 이것을 기피하고, 축산업자들과 한통속이 되어 있는 정부 관료들은 이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성 사료를 금지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상적이라면 쓰레기로 처리해야 할 동물의 사체를 가공하여 가축의 먹이로 사용함으로써 추가적인 이윤을 챙기는 데 그들은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원래 초식동물인 소한테 동물성 사료 섭취를 강요한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폭력인가 하는 생각이 있다면 이런 짓을 할 리가 없다.
제러미 리프킨의 <쇠고기를 넘어서-축산문화의 번영과 쇠퇴>(1992)는 광우병이 화제가 되기 전에 씌어진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미국의 소들은 예전부터 동물사료 외에 온갖 것을 다 먹도록 강요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축산업자들은 닭이나 돼지의 배설물이나 톱밥과 마분지 따위를 소먹이에 첨가하기도 하고, “보통사료보다 체중이 30%나 빨리 불어나게 한다”는 이유로 시멘트가루를 먹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소들도 이 세상의 귀한 생명이다. 그러나 지금 오로지 쇠고기의 원료가 되기 위해서 비좁은 우리 속에 꼼짝없이 갇혀 지내야 하는 소들은, 항생제, 성장호르몬, 신경안정제를 비롯한 갖가지 화학물질이 들어간 사료를 먹고 체중을 불리면서 도축장으로 갈 날을 기다릴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선망해 온 ‘미국식 생활방식’이란 이처럼 잔혹한 폭력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다.
9·11 테러 직후 미국 대통령 부시는 ‘미국식 생활방식’은 협상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폭력의 논리에 중독된 인간들이 오늘날 이 세계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가자는 대로 우리가 계속 따라가는 어리석음을 이제는 더 되풀이할 수는 없다. 우리는 더 많은 촛불을 더 높이 들 필요가 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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