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삶의창
엊그제, 아주 아름다운 결혼식을 보았다.
음악회를 겸한 결혼식이었다. 초대객은 양가 가족을 합해서 100명을 넘지 않았다. 먼저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단의 연주가 시작됐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 ‘서곡’이 첫 곡이었다. 이어 소프라노 강혜정·이아경씨가 노래를 불렀고,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1번 <엘비라 마디간> 중 2악장을 연주했다.
결혼식은 그 다음에 이루어졌다.
신랑과 신부는 상기되어 있었다. 두 사람 다 50대로서, 일찍 혼자된 뒤 오랜만에 새 짝을 만나 하는 결혼이라 감회가 남달리 큰 듯이 보였다. 신랑에겐 전부인과 낳은 20대의 남매가 있었고, 신부에게도 일찍 얻은 19살짜리 딸이 하나 있었다. 이제 한 가족이 된 꽃다운 세 젊은이가 신랑·신부 입장을 앞장서서 인도했다. 세 젊은이는 오랫동안 함께 자라온 것처럼 다정해 보였다.
결혼식이 끝나고 연주회가 계속됐다.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작품 20의 연주가 끝나고서야 자리를 옮겨 피로연이 벌어졌다. 100여명의 하객들이 포도주를 곁들여 식사를 했다. 사이사이 하객들의 덕담이 이어졌다.
수가 적은데다 평소 신랑·신부와 워낙 가깝게 지낸 지인들이라서 하객들은 모두 금방 한통속으로 친해졌다. 식사 뒤엔 팝페라 가수가 초대돼 노래를 불렀고, 양가 직계가족들이 앞에 나와 인사말을 했다. 신랑은 혼자 남매를 키우던 때가 생각났는지 딸을 소개할 땐 목이 메었다. 가족들도 눈가를 닦았고 하객들 몇몇도 눈시울을 붉혔다. 딸에게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고백까지 이어졌다. 정말 사랑과 성찰이 넘치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결혼식이었다. 연주회까지 포함해서 그때까지 거의 세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자리를 뜨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른 결혼식 장면이 떠올랐다.
수천명의 사람들에게 거의 살포하다시피 하는 금빛 찬란한 청첩장들과 돈봉투를 들고 접수대 앞에 늘어선 사람들과 끝 간 데 없이 줄지어 세워놓은 화환들. 번쩍번쩍하는 조명과 속된 나팔소리. 신랑에게 만세를 부르게 하거나 야한 농담과 함께 팔굽혀펴기를 시키거나 부모 앞에서 깊은 키스를 주문하는 얼빠진 사회자와 그 친구들. 접수만 끝나면 식장 안에 발도 들여놓지 않고 연회장으로 내달아 접시 가득 산더미처럼 음식부터 날라다 먹는 사람도 부지기수이고, 뒤에 몰려 서서 주례사를 들을 수 없을 만큼 큰 소리로 잡담하는 이들도 부지기수이고, 접수대에서 태연자약 돈봉투를 열어 지폐를 헤아리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많은 이들은 청첩장을 차라리 ‘고지서’라고 부른다. 요즘은 아예 동창회에서 동창생 전원에게 결혼식을 일괄해 문자로 공지한다. 당연히 혼주는 하객들 수를 예측조차 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난장이나 다름없다. 혼주는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이나 지위를 과시하는 데 혈안이고 하객들은 혼주와 눈도장이나 찍으면 그만이다. ‘센 자리’의 혼주에겐 축의금을 빙자한 ‘뇌물 공여’가 다반사라는 것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러니 무슨 축하할 마음이 생겨날 것인가. 혼주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허장성세하려고 하객 아르바이트를 산다는 소문도 있다. 나라고 이런 관행을 비켜간 것은 아니다. 두 아이를 결혼시키면서 좀더 고요하고 품격 있는 결혼식을 상상해 보았지만 상대가 있으니 내 뜻대로만 하자고 할 수가 없었다. 관행이 잘못됐다는 걸 아는 사람도 관행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관행의 구조화가 너무도 단단히 진행돼 온 것이다. 낯선 사람끼리 수백 수천 명씩 모여 앉아 게걸스럽게 밥 먹고 공허히 헤어지는, 문화라곤 손톱만큼도 깃들 여지가 없는 이 따위 야만적인 혼례 관행은 언제 생겨난 것일까. 관혼상제의 관행은 예법의 기본이고 문화의 척도이다. 이런 야만적인 관행이 어디 혼례뿐이겠는가.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수천명의 사람들에게 거의 살포하다시피 하는 금빛 찬란한 청첩장들과 돈봉투를 들고 접수대 앞에 늘어선 사람들과 끝 간 데 없이 줄지어 세워놓은 화환들. 번쩍번쩍하는 조명과 속된 나팔소리. 신랑에게 만세를 부르게 하거나 야한 농담과 함께 팔굽혀펴기를 시키거나 부모 앞에서 깊은 키스를 주문하는 얼빠진 사회자와 그 친구들. 접수만 끝나면 식장 안에 발도 들여놓지 않고 연회장으로 내달아 접시 가득 산더미처럼 음식부터 날라다 먹는 사람도 부지기수이고, 뒤에 몰려 서서 주례사를 들을 수 없을 만큼 큰 소리로 잡담하는 이들도 부지기수이고, 접수대에서 태연자약 돈봉투를 열어 지폐를 헤아리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많은 이들은 청첩장을 차라리 ‘고지서’라고 부른다. 요즘은 아예 동창회에서 동창생 전원에게 결혼식을 일괄해 문자로 공지한다. 당연히 혼주는 하객들 수를 예측조차 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난장이나 다름없다. 혼주는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이나 지위를 과시하는 데 혈안이고 하객들은 혼주와 눈도장이나 찍으면 그만이다. ‘센 자리’의 혼주에겐 축의금을 빙자한 ‘뇌물 공여’가 다반사라는 것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러니 무슨 축하할 마음이 생겨날 것인가. 혼주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허장성세하려고 하객 아르바이트를 산다는 소문도 있다. 나라고 이런 관행을 비켜간 것은 아니다. 두 아이를 결혼시키면서 좀더 고요하고 품격 있는 결혼식을 상상해 보았지만 상대가 있으니 내 뜻대로만 하자고 할 수가 없었다. 관행이 잘못됐다는 걸 아는 사람도 관행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관행의 구조화가 너무도 단단히 진행돼 온 것이다. 낯선 사람끼리 수백 수천 명씩 모여 앉아 게걸스럽게 밥 먹고 공허히 헤어지는, 문화라곤 손톱만큼도 깃들 여지가 없는 이 따위 야만적인 혼례 관행은 언제 생겨난 것일까. 관혼상제의 관행은 예법의 기본이고 문화의 척도이다. 이런 야만적인 관행이 어디 혼례뿐이겠는가.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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