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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값비싼 민어를 먹은 죄 / 손철주

등록 2008-07-18 19:13

손철주  학고재 주간
손철주 학고재 주간
삶의창
<신의 물방울>을 쓴 아기 다다시는 와인에 얽힌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푼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비싸다는 로마네 콩티를 마셔봤단다. 어찌나 황홀했던지 맛과 여운과 향기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극찬한 글을 썼다. 못 마신 독자에게 염장을 지르던 그의 글은 말미에 가서 웬걸, 떨떠름한 심사를 밝힌다. 그 훌륭한 와인을 마시고 돌아올 때는 갈지자로 걸었다는 것이다. 그의 품평은 이렇게 끝난다. ‘백만엔짜리 와인이나 천엔짜리 와인이나 취하기는 매한가지였고 이것이 평등한 건지 불평등한 건지 고민했다.’ 고민할 거리가 될까. 불평등한 술도 평등한 취기를 낳아야 공평하다.

초복을 눈앞에 두고 민어를 먹었다. 열이 넘는 일행이 먹고도 남은 9.4㎏짜리 민어다. 미식가 한 분이 새벽 2시 어름에 상인을 앞세우고 수산시장 경매에 나가 낙찰받았다. 그분 말씀이 ‘오늘 대한민국에서 나온 민어 중 가장 큰 놈’이란다. 그는 한강변 식당에 상을 차린 뒤 일행을 불렀다. 도톰하게 잘린 민어회는 빛깔만 봐도 단침이 흐른다. 혓바닥에 감기는 차지고 쫄깃한 생살이야 익히 아는 바지만 부레를 넣어 끓인 매운탕은 깊숙한 국물 맛에 보양식이 따로 없구나 싶었다. 우리가 먹은 민어는 삼박자를 갖췄다. 우선 제철 음식이다. ‘봄 도다리, 여름 민어, 가을 전어, 겨울 숭어’란 말이 있듯이 민어는 복달임으로 으뜸가는 생선이다. 게다가 가까운 산지에서 난 활어였다. 산 채로 회를 떴으니 선도는 말할 나위 없다. 마지막으로 누구와 더불어 먹느냐가 중요한데, 속 터놓고 지내는 지인들과 어울리면 ‘만남’이 ‘맛남’과 동음동의가 된다.

식구처럼 지내는 우리 일행은 수저질에 바빴다. <자산어보>까지 뒤져보고 온 선배는 뱃살 두어 점을 씹으며 말했다. “민어(民魚)는 ‘맛이 달다’고 돼 있더군. 원래 면어( 魚)로 썼대. 왜 ‘백성 민자’로 바꿨을까 생각해 봤어. 양반들이 단맛을 보면서 백성의 쓴맛을 떠올렸던 까닭이겠지.” 선배는 전고와 추측이 뒤섞인 해석을 내놓았다.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다. 단맛에 길든 양반이 백성의 쓴맛을 이해하면 평등한 것인지 불평등한 것인지, 맛난 민어가 들어간 입으로는 답을 내뱉기 어려웠다.

술이라면 이백에 뒤지지 않은 두보는 청탁을 가리지 않고 마셨다. 상하품 고루 마셔본 그가 갈지자로 걸으며 읊은 시가 있다. “시골집 낡은 동이 보고 비웃지 마소/ 거기에 술 거르며 아들 손자 다 키웠지/ 은주전자로 좋은 술 따를 때 부럽겠지만/ 취한 뒤 대뿌리에 걸려 자빠지기는 마찬가지” 자빠짐으로써 평등을 완수한 두보는 무릎의 상처가 쓰라렸는지 뒷날의 시에 술잔을 잡고 머뭇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며칠 전 어느 문사가 민어탕을 먹고 쓴 글이 신문에 났다. 그는 ‘아무리 인생이 힘들어도 죽지 말자고 다짐한다. 죽으면 이 맛을 즐기지 못할 것 아닌가’라고 썼다. 안 먹어서 죽지 못 먹어서 죽지 않는다.

오래전에 들은 술꾼과 스님의 일화가 떠오른다. 술꾼은 저세상에 술이 없을까 늘 걱정한다. 스님은 그에게 흰 개와 검은 개 얘기를 들려준다. 검은 개는 흰 개를 부러워했다. 흰 개는 내세에 사람으로 환생하게 돼 있다. 흰 개가 걱정을 털어놓는다. “내가 사람 똥을 가장 좋아하는데 사람이 되어서도 그걸 좋아할지 걱정이다.” 스님이 술꾼에게 말한다. “당신의 걱정은 흰 개의 걱정과 닮았다.” 식도락이 탐식으로 나아가면 채신머리 없는 사람으로 손가락질 받는다. 값비싼 민어를 먹은 게 죄밑이 된 모양이다. 공연한 소리가 길었다.

손철주 학고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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