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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유재천 KBS 이사장께 / 김종철

등록 2008-07-24 19:41

김종철  논설위원
김종철 논설위원
아침햇발
일면식도 없는 처지에 공개편지를 쓰는 것을 너그럽게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다행히도 이사장님과 인연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1980년대 후반 언론사 입사 준비를 할 때 이사장님의 저서와 논문을 읽으면서 언론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었습니다. 뒤늦게나마 감사드립니다.

이사장님,

지난달 초 한국방송 이사장에 선임된 뒤 일부에서는 이사장님의 근년 활동 등을 들어 정치적 편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젊었을 때부터 언론 자유와 방송 민주화에 대한 소신을 줄기차게 펼쳤던 원로 언론학자이기에 저로서는 지켜보자는 생각이 없지 않았습니다.

편집권 보장, 민영방송 반대, 공영방송 지지 등 이사장님의 언론관은 후학들의 등불이자 언론정책의 가이드 구실을 했습니다. 특히 독립성과 다양성, 중립 및 공정성, 공공의 참여 등 공영방송의 4가지 기본원칙의 제시는 방송학의 교과서가 됐습니다. 이 가운데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가장 강조하셨지요. “방송의 운영이나 편성은 정부나 기타 어떤 집단이나 세력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한국언론과 언론문화> 나남, 1988)는 ‘선언’은 방송 민주화의 이념적 토대였습니다. 최근에도 “정파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대통령이 공영방송의 독립성 보장 의지를 밝히는 일이 필요하다”(<세계일보> ‘유재천 칼럼’, 2008.3.3)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사장이 되고 난 뒤의 행보는 학자 시절 발언과는 너무나 다른 것 같습니다. 지난주 <한국방송> 정연주 사장을 만나 “살신성인의 결단을 내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며 자진 사퇴를 권했다지요. “조직의 내분 양상이 보기에 안타까워 그랬다”고 했지만, 본인이 내세운 공영방송의 기본 원칙에 어긋납니다. 정치적 독립을 위해 임기를 보장한 공영방송 사장을 내부 갈등을 이유로 중도에 그만두라는 게 이치에 맞습니까? 구성원들 간의 갈등도 어떤 면에서는 공영방송의 원칙과 가치를 실현하는 데 오히려 도움되는 것 아닌가요?

더구나 지금 한국방송(KBS)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어떻습니까? 이명박 정부가 감사원과 검찰 등 모든 권력기관을 동원해 정 사장을 중도에 내쫓으려고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정연주=공영방송 수호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정권의 사장 내쫓기가 방송 민주화의 후퇴, 방송 독립의 뒷걸음질이라는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한국방송 이사회를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정 사장을 해임할 근거가 되도록 한국방송 이사회에서 해임 건의안을 곧 처리할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 5월에 이사회가 그런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사회의 사장 해임 건의나 사퇴 권고 등이 방송법의 규정을 넘어서는 월권행위라는 것을 모르시지 않겠지요?

이사장님,


지금이야말로 언론학자로서 학문적 양심과 소신을 실천할 때입니다. ‘적어도 이건 아니다’고 왜 말 못 합니까? 박재완 청와대 수석이 “한국방송은 정부산하기관으로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구현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왜 호통치지 못했습니까? 방통위가 신태섭 이사를 불법적으로 해임했을 때 왜 잘못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설마 ‘이명박 돌격대’ 노릇을 하려고 작심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한국방송 이사장 자리는 3년에 불과하지만, 언론학자 유재천에 대한 평가는 기한이 없습니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확장시키는 데 공헌했는지 훼손하는 데 앞장섰는지 역사가 기록할 겁니다. 부디 학자로서의 삶에 먹칠을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김종철 논설위원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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