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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보이콧의 아름다움 / 김종철

등록 2008-07-25 19:32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삶의창
다 아는 얘기지만, 고대 그리스 폴리스의 민주주의는 자유시민에 의한 직접민주주의였다. 이들 자유시민은 일상적으로 대개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이었지만, 공동체 전체에 관계된 일을 위해서 자신의 생업을 잠시 접어두고 공공의 공간으로 나오곤 했다. 그것이 이 도시국가에서 정치의 의미였다. 그런데 이 정치적 활동은 철저히 자유시민에게 국한되어 있었다. 그리스 사회에서 자유인과 노예를 가르는 결정적인 기준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었다. 노예는 단지 힘겨운 육체노동만 했던 게 아니라, 장사를 하여 돈을 벌 수도, 이솝의 경우처럼 문학활동도 할 수 있었다. 노예에게 허락되지 않은 유일한 활동은 바로 ‘정치’였다.

정치는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인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공적 활동이었다. 오늘날 영어에서 바보 혹은 백치라는 뜻으로 쓰는 낱말 ‘이디어트’(idiot)는 ‘이디오테스’(idiotes)라는 그리스 말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 말은 원래 “공공의 문제에 관심이 없이 오직 사사로운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그리스인들에게 정치란 근본적으로 개인의 사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공동체 전체의 보편적 이익을 생각할 줄 아는 인간적 능력을 전제로 한 활동이었다.

물론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노예제와 여성차별에 기초해 있었다는 점에서 그 한계는 뚜렷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이 정치 참여를 ‘자유인’됨의 핵심적인 징표로 간주하고 있었다는 것은 음미할 만하다.

오늘날 우리는 근대적 국민국가의 틀 속에서 직접민주주의는 불가능하며, 가능한 것은 오직 대의제 민주주의뿐이라는 생각에 길들여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원래 민중에 의한 자치를 뜻하는 것이라면, 민중 자신의 삶에 관한 결정권을 이른바 정치 엘리트들에게 위임하도록 고안된 제도가 결코 진정한 민주주의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지금 현실적으로 대의제 민주주의 이외의 틀을 상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필요한 것은 이 제도가 민중의 자치욕구를 조금이라도 더 충실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비판하는 일일 것이다.

지난 5월 이후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는 촛불집회는 바로 그동안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명백히 실패했음을 증언하면서, 동시에 이 나라 민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엄청나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드러내었다. 촛불집회를 통해서 분명해진 것은 많은 사람들이 ‘경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와 인간다운 존엄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촛불집회의 근원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이것은 더이상 ‘노예’의 삶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유인’으로 살겠다는 결연한 자세에서 비롯한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민중의 자세가 지배세력에게 달가울 리 없다. 생각해 보면 민중의 살아 있는 정신과 민주적 에너지는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임이 분명한데도, 지금 권력은 민중의 에너지를 전방위적으로 억압하고 탄압하는 데 광분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이 이렇게 나오는 것은 당분간 선거가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선거가 아니라도 투표는 언제나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사회정의와 공공성을 우습게 여기는 자본과 국가 및 언론권력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우리가 매일매일 상품과 서비스를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투표 행위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투표 행위의 일상적 실천이야말로, ‘자유인’으로서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손쉬운, 그러나 가장 효과가 확실한 비폭력적 저항운동이 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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