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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송아지야 걱정마라 / 박기호

등록 2008-08-01 19:11

박기호  신부
박기호 신부
삶의창
“고맙고 반갑다. 우리 곁에 태어난 걸 환영한다. 너희가 살아남기도 어려운 험한 세상이다만 한우의 명예를 지켜다오!”

어젯밤 송아지가 태어났다. 우리 마을에서는 소·염소·양계 등 축산을 중고생들이 담당하는데, 소나 염소가 새끼를 낳을 때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싱글벙글 좋아한다. 무릇 생명의 탄생이란 축복이다. 그래서 사람이든 짐승이든 갓난 것은 모두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이곳은 비탈진 밭이 많아 주로 쟁기로 일을 한다. 몇 해 전 쟁기질할 소 한 마리를 650만원에 구입했는데, 값이 계속 떨어지더니 작년 가을 270만원에 팔렸다. 크게 손해를 보았지만 그가 낳고 간 송아지가 어미가 되어 어젯밤 둘째를 순산한 것이다.

지난봄 우사를 새로 지었다. 친구 신부들에게 ‘한우 펀드’에 투자하시라 꼬드겨서 송아지 두 마리를 200만원씩에 사들였다. 지금은 값이 떨어져 130만원이면 살 수 있다. 친구들과 통화할 때는 ‘펀드’란 말 대신 ‘후원’으로 슬그머니 바꿔 말한다. 체면이 말이 아니다. 어쨌건 태어난 송아지까지 다섯 마리가 되었는데, 두 세 마리를 더 구입하려 한다. 펀드 추락을 막기 위한 시장 개입도 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새 축사는 퇴비 생산 목적으로 지었다. 60㎝ 깊이로 파서 방수를 하고 대량으로 채운 톱밥 왕겨가 소의 분뇨를 흡수하면 유용 미생물(EM)로 자체 발효시킨다. 내년봄이면 퇴비로 쓸 수 있다. 소똥은 축분 중에 가장 효과가 탁월하다. 문제는 사료의 원료인 미국산 옥수수·밀·콩의 90%가 유전자조작 농산물(GMO)인데다, 항생제·성장촉진제·제초제·살균제·방부제 문제로 안심할 수 없다. 사료 값도 3년 전 4600원 하던 것이 요즘 1만800원이다.

우리는 유기농을 하는데 밭농사를 사료가 될 수 있는 작물로 바꾸기로 했다. 추수하고 남은 옥수숫대·콩깍지·야콘·고구마·더덕줄기들을 분쇄하여 발효시키면 영양 좋은 사료가 된다. 분뇨의 질도 좋아 그것이 작물의 퇴비로 가고 작물은 다시 사료가 된다. 이를 ‘경종-축산 순환농법’이라 한다. 그것이 축산비전 제로인 시기에 소 두 세 마리를 더 사려는 이유다. 소값이 더 떨어져도 상관없다. 고기 생산에는 관심 없다.

미국은 곡물 제국이다. 가격 인상만으로도 국내 축산농가를 소멸시킬 수 있다. 단연 순환농법이 대안이다. 문제는 그것이 기업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축산가는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나 지자체가 농축산 교합 시스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어쨌건 농업과 축산을 겸하는 일은 소농만이 가능하다. 소농은 감당할 만큼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신자유주의 시장 질서에서 모든 소규모 체제는 소농과 기업, 국가에 이르기까지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전락한다.

그런데 세계 지성들은 식량 생산과 생태환경 문제의 대안으로, 역설적이게도 ‘소농’에 주목하고 있다. 소농의 생산능력과 가치를 재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로 보아 대농은 부와 권력을 지켰고 소농은 품종을 지키고 전통과 마을 자치의 삶을 지켰다. 농축산 기업은 유전자 변형과 광우병을 가져 왔지만, 소농은 농토와 보호받지 못한 목숨들을 살려냈다. 이는 <녹색평론>에서도 쉽게 배울 수 있다. 이제 국가는 소농을 살리고, 소농은 땅과 식탁을 살리고, 도시인은 육류 소비를 줄여 건강한 섭생을 찾아야 한다.

우리 공동체 마을은 ‘소농’의 신조를 지켜가려 한다. 송아지한테 젖을 물린 채 되새김질하는 어미 소의 커다란 눈망울을 마주 본다. “소야, 걱정하지 마라. 잘 먹고 똥 많이 싸라. 너는 소가 아니고 농사꾼이다.”


박기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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