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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대동여지도에 담긴 뜻 / 박범신

등록 2008-08-08 19:23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삶의창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모눈종이 같은 방안(方眼)을 기반으로 한 경위선 표식 지도이며 전국을 세로 6.6m, 가로 4m에 그려낸 과학적 축적지도이다. 현존하는 우리의 고지도 중 가장 크지만 동시에 분합(分合)이 자유로워 휴대하기 편하게 고안된 절첩식으로 되어 있다. 전국을 남북으로 120리 간격, 22층으로 나누어 그렸으며, 이 22층을 상하로 이어놓으면 전국지도가 되고, 필요한 대로 나누어 쓰면 분도(分圖)로 간편히 휴대할 수 있다. 또한 한 첩도 절(折)로 나누어 병풍처럼 접고 펼 수 있게 해 전국 지도를 층과 절에 따라 접으면 당시의 일반적인 서책만 하게 꾸려지는 효율적인 방식이다. 김정호가 얼마나 지도의 실제적 가치를 중요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백성이 역(役)을 행하고 오가는데, 무릇 물과 뭍으로 오가는 바, 험한 곳과 평탄한 곳, 성큼성큼 걸을 수 있거나 자취를 감출 수 있거나 하는, 모든 것을 다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이것으로 적을 막는 걸 돕고 우악스럽거나 사나운 것을 도모하며, 시절이 화평하면 이것으로 나라를 잘 다스리고 백성을 다스릴지니, 모두 나의 이것으로 취함이 있을 것이다.”

‘대동여지도’ 서문 격인 ‘지도유설’(地圖類設)에서 김정호가 한 말이다. 이것이란 물론 ‘대동여지도’를 가리킨다. 한마디로 말해, 위급할 때 백성의 안전을 도모하고 평화로울 때 백성의 삶을 돌보는 데 쓰라고 평생 몸 바쳐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완성하고 손수 놀랍게 섬세한 솜씨로 일일이 판각하여 목판본으로 완간했다고 알려진 1861년만 해도, 지도란 국가권력만이 소유할 수 있는 비밀 병기 같은 것이었다. 그 전에도 전국지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모두 비변사나 규장각 서고에 감금되어 있었다. 그나마 대부분 필사본이어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두루 이용할 수 없었다. 김정호가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목판본 지도를 손수 만든 것은 그런 의미에서 혁명적 발상이라 할 만했다. 백성 누구나 자신의 안위를 지키고 나아가 강토의 활용가치를 드높이는 데 ‘대동여지도’가 이용되길 강력히 바랐던 것이다.

김정호는 또 썼다.

“재상은 천자(天子)를 보좌하여 나라를 경경하는 데 있어, 무릇 나라의 경계가 되는 요새나 … 전쟁이 나면 조처해야 할 일이나, 이런 것을 모두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지도유설’에 보면 관리들이 국토의 형세를 잘 알아서 만백성을 지키고 또한 그 국토를 이롭게 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 대목이 유난히 많다. ‘지도’로써 백성의 안위를 잘 지키는 것이 치자(治者)의 첫째 할 일이요, ‘지도’로써 백성의 삶이 풍요로워지도록 돕는 것이 치자의 두 번째 할 일이라는 것이다.

각설(却說)하고, 나라에서 보장하고 나라가 허락해준 ‘대리인’이 관리하는 ‘금강산’에 돈까지 내고 간 사람이 연유조차 모른 채 총 맞아 죽은 지도 어언 한 달여가 돼 가고 있다. 죽은 그이는 그곳이 자유롭게 가볼 수 없는 ‘내 나라 내 땅’이라는 애국의 마음으로 그날 새벽 산책을 나왔을 터이다.


그러나 나라에선 직접 가해자인 ‘저쪽’에 대고 핏대를 올리고 삿대질만 하는 데 여념이 없다. 세세한 설명은커녕 표지판 하나 보기 편하게 설치한 바 없고 경계울타리조차 세우지 않고 방치한 그 어떤 ‘대리인’ 혹은 관리의 책임을 물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으니 김정호가 지하에서 통탄할 일이다. 죄 없이 아깝게 잃은 생목숨의 책임이 단지 제 땅에 들어왔다고 총부터 쏘고 본 저들에게만 있는 것인가.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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