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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준만칼럼] 지역의 연인이 되자

등록 2008-08-31 20:08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준만칼럼
“지역의 연인이 되자.”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인구 6만7천의 도시 벨링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자동차 범퍼 스티커의 문구다. 이뿐만 아니라 이 도시의 가게들, 티셔츠, 광고 전단지, 신문 등에서도 “지역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의 것을 사고, 지역 사람이 되자!”는 구호를 만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2003년에 “지역 먼저” 캠페인을 시작했던 지역인 소유 기업 연합체인 ‘지속가능한 연대’의 활동 성과다. ‘지속가능한 연대’는 누가 한달 동안 지역 업소들로부터 가장 많은 영수증을 모으는지 경쟁하는 대회를 열어 1등을 차지한 사람에게 지역 레스토랑에서 한달 동안 공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권을 주기도 한다.

왜 이러는 걸까? 지역인 소유 업소에서 지불된 1달러는 대기업 체인에서 지불된 1달러보다 지역 경제활동에 세 배 이상 기여하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 업소에서 상품을 구매할 때 생기는 공동체적 유대감이나 공급체인을 단축시키는 데서 오는 어마어마한 환경혜택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우석영씨가 번역해 출간한 프란시스 무어 라페의 <살아 있는 민주주의>(이후)에 나오는 이야기다. 지역의 연인이 되지 않고선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애국심이 강한 이들은 “지역의 연인이 되자” 캠페인은 일종의 ‘지역 쇼비니즘’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처럼 “우리나라 전체가 중국의 자치성(省) 하나보다 작은데 수도권, 비수도권으로 나누는 게 의미가 있느냐”는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실은 바로 그런 의문이야말로 대(大)를 위해 소(小)는 희생해도 좋다는 ‘개발독재’ 논리다. 폐쇄적 배타성은 경계해야 하지만, 지역 경제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지역 주민들이 최소한의 자존감도 지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경우에도 국가주의를 내세울 수 있을까? 우리는 개발독재가 박정희·전두환 시절의 마감으로 끝이 난 걸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건 착각이다. ‘개발독재’를 관철시키는 방법론만 달라졌을 뿐, 개발독재 사고방식은 모든 국민과 사회 전 국면에 침투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개발독재 논리가 ‘서울 1극 구조’다. 국제 컨설팅기업인 베인앤컴퍼니 코리아의 이성용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미국에 있었을 때는 사업상 미국 전역을 여행할 기회가 잦았다. 고객이나 공급업자들과 간단한 인터뷰를 하려 해도 각각 다른 도시들을 찾아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5일 정도는 길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 오고 난 뒤, 국내 여행 횟수는 거의 제로에 가까워졌다. 모든 것이 서울에 있고 모든 비즈니스들이 서울에서 행해진다. …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토록 한 도시에 심각하게 집중하는 현상은 본 적이 없다. 서울 과다집중 현상은 이미 위험수위에 다다랐고,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런 시스템이 효율적이라고 믿고 있다. 서울의 극심한 교통체증과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국고 손실만 해도 연간 13조∼15조원에 이르지만, 이런 비용은 아예 고려되지도 않는다. 국민 모두가 부담하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개혁·진보를 위한 노력마저도 서울에 집중돼 있다. 서울에서 일을 크게 벌여서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 모두 다 ‘국가의 연인’이 되고자 할 뿐 ‘지역의 연인’이 되려고 하진 않는다. 낙후되고 부패한 지역을 기반으로 그 어떤 국가적 영광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부디 지역에서부터 ‘작은 혁명’들을 일으켜 보자.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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