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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아테네, 로마, 대한민국 / 김종철

등록 2008-09-25 20:47

김종철  논설위원
김종철 논설위원
아침햇발
도시국가로 일컬어지는 폴리스가 고대 그리스에 발달했던 이유 중 하나는 땅이 척박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농경이 가능했던 곳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여 자연스레 도시를 형성했던 것이다. 한정된 땅에 사람이 늘면서 문제가 생겼다. 결국, 땅 경쟁에서 밀린 사람은 빚을 지고 노예로 전락한 반면 재력이 강한 사람은 더 많이 가지게 됐다.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사이에 갈등과 투쟁이 빈번했다.

그러나 아테네는 달랐다. 기원전 6세기에 아르콘(집정관)에 선출된 솔론은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유대인의 희년제와 같은 부채탕감 제도를 도입해 돈 때문에 노예가 됐던 평민을 해방시켰다. 또, 일정 한도가 넘는 토지는 몰수하고,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토지의 면적도 제한했다. 솔론의 개혁으로 아테네는 분열의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 통합을 이뤘다. 이후 민주정이 발달하고 사회 경제적으로도 부강한 폴리스로 떠올랐다.

시행한 지 3년밖에 안 된 종합부동산세(종부세)가 사실상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정부는 종부세 부과 대상을 현행 6억원(공시가격)에서 9억원으로 올리고 세율도 대폭 낮추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리 빼고 저리 깎아 주면 실제로는 15억원 이하는 종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최상위 2% 부자들에 대한 엄청난 감세 선물이다.

여당인 한나라당 안에서조차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은데도 정부는 원안 통과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종부세가 소수의 가진 사람들에게만 세금을 매기는 ‘징벌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댄다. 종부세는 “잘못된 세금 체계”(이 대통령) “고소득층에 대못을 박는 것”(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라는 발언에서 이명박 정부의 이런 생각이 잘 드러난다. 심지어 “징벌적 과세나 조세제도로 인해 한 명의 피해자라도 있다면 바로잡는 게 정부의 역할”(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라며 ‘부동산 부자=피해자’라는 논리까지 만들었다.

부자들의 세금 부담에 대한 걱정만 있을 뿐 사회 통합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다. 논리도 궁하다. 대체 누가 피해자인가? 서울 강남 대치동의 아파트 값이 지난 5년 동안 3배나 늘어난 강 장관인가 아니면 치솟는 집값을 바라보면서 한숨짓는 대다수 국민인가? 땅과 집을 가지고 있으면 저절로 재산이 느는 구조야말로 ‘잘못된 체계’다. 이런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뒤늦게 도입한 것이 종부세다. 선진국들은 종부세와 같은 성격의 재산 보유세 누진제를 오래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빈부 격차가 적은 사회일수록 보유세 비율이 큰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경제학 교과서는 이를 조세를 통한 사회정의의 실현이라고 한다.

종부세가 무력화되면 돈이 부동산으로 다시 몰릴 게 뻔하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다시 확인됐는데 수익률 낮은 예금이나 리스크가 큰 펀드 투자를 왜 하겠는가. 부동산 쏠림으로 인해 양극화도 더 심해질 것이다. 그만큼 사회 분열도 가속화된다.

고대 지중해에서는 아테네에 이어 로마가 패자가 됐다. 평시에는 농사를 짓다가 전시에는 자기 무기를 들고 자발적으로 일어섰던 자영 농민들 덕분이다. 하지만 대외 정복이 성공해 사회가 부유해질수록 자영민은 몰락하고, 대토지 소유자들은 늘었다. 로마는 라티푼디움(대농장)을 개혁하는 대신 땅을 잃은 평민들에게 공짜 빵과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쪽을 택했다. 이때부터 로마는 건강성을 잃고 내부적인 붕괴에 들어갔다. 부동산 독점을 제어하느냐 못 하느냐가 공동체의 통합과 성공의 열쇠라는 점을 역사는 말해 준다.


김종철 논설위원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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