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4강외교, 무엇을 남겼나 / 김지석

등록 2008-10-02 22:07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아침햇발
며칠 전 열린 한-러 정상회담을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 초기의 4강 외교가 일단락됐다. 미국과는 전략적 동맹 관계를 추진하기로 했으며,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는 각각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 높아졌다. 전략적 동반자는 동맹 바로 아래에 해당한다. 일본과는 이보다 낮은 성숙한 동반자 관계로 설정됐다. 우리 국력이 커지면서 경제·사회·문화·정치·안보 등 모든 면에서 4강과의 교류·협력이 더 깊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관계 격상은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례성 사건이 이어졌다. 이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때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40분 이상 늦게 면담 행사에 나타났고, 외무장관이 아닌 차관이 공항에 영접을 나왔다. 이 대통령이 5월 중국을 찾았을 때는 외교부 대변인이 “한-미 동맹은 역사의 유물”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일본 총리는 4월 정상회담에서 과거를 넘어 한-일 신시대를 열기로 한 뒤 석 달도 안 돼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교과서 해설서 발표를 강행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 대한 이 대통령의 지나친 저자세를 빗대 ‘부시의 푸들’이라는 현지 언론의 지적까지 나왔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미국과 일본은 한국을 가볍게 보고, 중국과 러시아는 우리를 껄끄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이명박 정부다.

정부는 한-미 동맹 강화를 모든 외교의 중심에 두는 미국 일원론을 추구한다. 그 표현이 바로 전략적 동맹 추진이다. 동맹은 동반자와 달리 군사협력이 필수이고, 군사력은 국가 목표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축이다. 따라서 전략동맹은 국가 목표 일치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미국의 현재와 미래 국가 목표가 얼마나 일치하는지, 두 나라의 국력 차이가 어떤 형태의 전략적 군사협력을 허용할지 등은 아주 어려운 문제다. 다른 나라들이 보기에 분명한 것은, 한국이 미국의 확실한 하위 동맹자이자 추종자로 편입되려 한다는 사실이다.

일본으로서는 이런 움직임이 불감청 고소원이다. 사실상의 한-미-일 삼각동맹 체제가 구축되면, 일본은 한국을 자신의 협력자로 두고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지역패권을 겨룰 수 있다. 독도 문제가 불거진 뒤 한국이 강경 기조로 돌아서자 일본은 자기반성은커녕 이명박 정부를 탓한다. 한-일 신시대는 출발부터 좌초했다.

중국은 미국이 자신을 경계하고 때때로 압박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만 한국이 거기에 가세하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상시적인 대중국 압박 틀이 될 수 있는 한-미 전략동맹 구축 시도에 대해 중국이 반발하는 까닭이다. 최근 들어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강화하는 러시아 역시 한-미 전략동맹에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냉전 시기 못잖게 갈등이 일상화할 수 있는 구도다.

미국이 동아시아의 모든 나라를 힘으로 쉽게 제압할 수 있다면 한국이 미국에 철저하게 편승해 이익을 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중장기적으로 다극화 추세는 필연적이며, 미국은 자신을 추격하는 강국들과 치열한 경쟁과 협력을 되풀이할 것이다. 한-미 동맹은 여전히 중요하겠지만, 한국이 미국의 추종자 또는 대리인으로 비치는 한 모든 나라로부터 경원당하고 무시당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의 4강 외교는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다. 그래서 장기 촛불집회와 독도 파문 등 여러 일을 겪었고, 도처에 잠재적 갈등요인을 만들었다. 원점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생각으로 균형외교의 틀을 짜지 않는다면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심각하게 모순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김지석 논설위원j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