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논설위원
아침햇발
남북 화해와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고사 위기에 놓였다. 북한은 12월1일부터 경협사무소를 폐쇄하고 남쪽의 상주인원을 절반으로 줄이는 조처가 “1차적”이라고 밝혔다. 상황에 따라 앞으로 2, 3차 조처를 취하겠다는 의미다. 추가 조처가 군사분계선 육로 통과 금지나 개성공단 전면 폐쇄가 될 것임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북한이 굳이 전면 폐쇄를 하지 않고 육로 통행만 막아도 입주업체는 제품의 납기일을 맞출 수 없게 돼 공장 문을 닫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눈앞의 상황이 빤히 보이는데도 이명박 정부는 여유만만이다. 남경필 의원 등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대북정책 전환을 건의하고 있지만, 힘없는 주변부의 목소리일 뿐이다. 청와대 관계자와 여당 대표, 대통령 측근 의원 등 권력 핵심부는 입을 맞춘 듯 “의연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이들은 주군인 대통령의 지침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을 뿐이다. 이 대통령은 얼마 전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고 말한 데 이어 그저께 삼부 요인과 만난 자리에서 “대북 문제는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말이 좋아 의연한 것이지 사실은 ‘해볼 테면 해보라’는 최후통보나 마찬가지다. 화가 잔뜩 난 상대에게 달래거나 진심을 전하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일희일비하지 않겠다”, “의연하게 대처하겠다”고 하면 약밖에 더 오르겠는가. 아무리 무능하다고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이런 평범한 이치를 모를 리 없다. 그 정도의 계산은 이미 끝났다고 봐야 한다.
대체 무슨 생각에서 이러는 것일까?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밝은 한 인사는 이와 관련해 이런 얘기를 했다. “취임 직후인 지난 3, 4월에 정권 차원에서 개성공단에 대한 재검토를 했으며, 5월에는 폐쇄됐을 경우에 대비한 시나리오까지 작성했다”고 말했다. 수천억원의 투자금이 공중으로 날아가고 수십개의 중소기업이 파산할 수 있지만, 그 정도의 손실은 우리 경제 규모에 비춰 볼 때 그다지 크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개성공단쯤은 희생시킬 각오가 이미 돼 있다는 얘기다. 아하! 이제야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국회에서 개성공단 폐쇄 가능성을 남 얘기 하듯 아주 담담하게 답변한 것 등 이 정부 사람들이 ‘여유’를 부리고 있는 까닭이 이해된다.
더구나 북쪽의 결정으로 개성공단이 문을 닫을 경우 법적·정치적 일차 책임은 북한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 정권의 자칭 전략가들은 이런 약삭빠른 계산 속에 북쪽이 내놓는 강경 카드를 보면서 커튼 뒤에서 빙긋이 웃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부의 셈법과 예상이 다 맞아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얻을 게 뭔가. 우리 정부의 바람대로 “북한의 버르장머리”가 다소 고쳐진다고 하더라도 남는 게 뭔가. 그때는 이미 남북한 기싸움의 볼모가 된 개성공단은 공중으로 사라진 뒤일 텐데 말이다. 그리고 북한의 버르장머리는 김영삼 정권도, 부시 정권도 못 고쳤다.
경제적인 가치는 그만두고라도 개성공단은 남북 평화와 공존을 약속하는 화해의 땅이다. 6·25 때 북한군의 남침로였으며 휴전 뒤에는 정예부대의 주둔지였던 곳이다. 그곳에는 총 든 군인 대신에 현재 3만3천여 북한 주민이 남쪽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최종 완공될 때는 20여만명의 일터가 된다. 말 그대로 탱크를 녹여 보습을 만드는 평화의 현장이다. 통일의 관점에서 보든 평화의 시각에서 보든 소중하게 키워가야 할 한민족의 자산이다. 이명박 정부는 역사의 죄인이 되려는가.
김종철 논설위원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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