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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준만칼럼] 한국형 평등주의

등록 2008-12-14 21:58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준만칼럼
“일본의 정부 부서 중 강력한 위치에 있는 통상산업성의 요직은 70% 정도가 도쿄대 출신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한국의 대응 부서인 외교통상부에서 서울대 출신이 이보다 낮게 나타나도 서울대 견제 목소리가 높다. 서울대 독점을 견제해야 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이른바 ‘서울대 망국론’으로까지 발전된다. 미국의 동부에 편중되어 있는 금융기관, 법률회사, 증권회사, 정치조직 등은 동부의 13개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들로 장악된다. … 그래도 미국에서는 ‘아이비리그 망국론’이 나오지 않을뿐더러,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톡톡히 망신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이라는 책에서 한국의 평등주의가 지나치다는 증거 사례로 한 말이다. 이게 송 교수 개인만의 독특한 생각이라면 굳이 반박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다. 평등주의 비판은 이 책을 출간한 삼성경제연구소를 비롯하여 이 나라의 주류를 자처하는 지식 엘리트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까지 이들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옮기는 데 혈안이 돼 있는바, 송 교수의 주장에 반론을 펴야겠다.

도쿄대 출신의 통상산업성 장악이 일본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일본 정부는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 시절부터 도쿄대의 고급 공무원 독식이 사회적 부작용을 낳는다는 판단 아래 이 대학 출신자의 고급 공무원 합격 비중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정책을 써왔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가?

미국은 어떤가?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바마가 고위직 인선 35명 중 22명을 명문대 출신으로 채운 것을 놓고 말이 많다. 명문대 점유비가 겨우 63%인데다 명문대 출신이라는 22명의 출신 대학은 10개 이상인데도, 일부 논객들은 강한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는 한국에선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한국에선 서울대 출신만 63% 이상을 먹는 일이 많았어도 별말이 없지 않았던가.

미국 아이비리그 출신의 요직 장악률이 높다 해도 아이비리그는 단일 대학이 아니다. 13개 대학이다. 서울대를 13개로 쪼개서 고위직을 다 먹어라. 누가 뭐라 하겠는가. 13개가 상호 견제와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과 단일체가 되어 조폭식 행태를 보이는 것이 어찌 같을 수 있단 말인가.

송 교수는 아무래도 ‘망국론’이라는 단어에 신경이 예민해진 것 같은데, 높은 곳만 보지 말고 낮은 곳도 보면 좋겠다. 입시전쟁으로 해마다 자살하는 학생이 얼마나 되며, 서민층의 삶이 자녀 사교육비로 얼마나 피폐해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출산율이 세계 꼴찌를 기록한 주요 이유가 바로 입시전쟁과 사교육비 부담인데, 출산율 꼴찌야말로 국가경쟁력을 걱정하는 엘리트들이 가장 두렵게 생각해야 할 일 아닌가?

‘서울대 망국론’은 서울대 혼자서 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써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서울대가 한국 최고의 엘리트집단으로서 책임의식을 가져보라는 뜻이다. 위에 던진 질문에 대한 고민이 포함된 대안 제시도 해가면서 엘리트 노릇을 해야지, 오직 평등주의가 나라 망친다는 선전·선동만 해서야 쓰겠는가.

<88만원 세대>의 공저자인 박권일씨는 일반적 평등주의는 ‘사회 전체의 비대칭’을 문제삼는 데 비해, 한국적 평등주의는 ‘부자와 나의 비대칭’만 문제삼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형 평등주의는 “나도 부자가 되어야 한다”거나 “내 새끼도 서울대 가야 한다”는 원리에 의해 작동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교수들이 앞다투어 한국형 평등주의를 넘어서자는 목소리를 낸다면 ‘서울대 망국론’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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