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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창] 공정택 교육감님께 / 박범신

등록 2008-12-26 19:26

박범신/작가·명지대 교수
박범신/작가·명지대 교수
삶의창
파면과 해임으로 쫓겨난 선생님들이 학교 교문 앞에서 울고 있는 걸 텔레비전으로 보았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에 나갔으니 선생님은 죄가 없다’고 울부짖는 아이들과 학부형들도 보았습니다. 수업 시작 종이 울리자 ‘너희는 그래도 공부해야 한다’며 울부짖는 아이들을 억지로 학교에 들여보내는 선생님의 모습은 솔직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참된 교육은 사랑과 감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교육감님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교육감님, 저는 그 순간 알아차렸습니다. 이 전근대적인 ‘싸움’에서 최종적으로 어느 쪽이 이길 것인지를요. 사랑과 감동보다 더 진실한 것도 없고 또 그것보다 더 전염성이 강한 것도 없으니까요.

어디 사랑과 감동뿐이겠습니까. 교육의 주체는 말할 것도 없이 학생과 선생님들입니다. 헌법도 이를 전제로 교육의 자율성과 정치적인 중립을 근원적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징계를 받은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일제고사냐 체험학습이냐, 그 선택권을 그들에게 부여했습니다. 성적에 따른 폭력적인 서열주의가 교육현장을 황폐화시켰음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 전체를 경쟁제일주의의 반인간화로 내몬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선생님들이 보여준 선택은 그런 점에서 최소한의 것으로서, 그야말로 ‘소심한 자율권의 행사’로 제 눈엔 비쳤습니다. 그런데 상습 성추행 교사나 금품수수 교사는 제쳐두고 유독 ‘소심한 자율권’을 행사한 극소수의 선생님들에게 파면이라니요. 파면은 퇴직금조차 제대로 다 받지 못하는 죽음의 선고입니다.

교육감님.

오래전 유신시대, 저는 어느 시골 중학교에 근무했습니다. 그때의 교장선생님은 전근대적 이념으로 무장한 분이었고, 모든 학교행정을 오로지 유아독존적인 당신의 뜻에 따라 행사했습니다. 선생님들에게 당연히 지급하도록 돼 있는 자습비(공식 이름은 기억 안 납니다)조차 당신 마음대로 전횡했으나 ‘소심한 선생님’들은 누구 한 사람 감히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젊었던 저는 선생님들의 울분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침 직원회의에서 그 점을 정식으로 지적했지요. 파장은 컸습니다. 제가 지적한 문제들은 차후에 개선됐으나 그 후유증으로 저는 자의 반 타의 반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그때 제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폭압적인 교장의 전횡보다 사달이 시작된 이후 모든 동료 선생님들이 보여준 ‘비겁한 침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변했습니다. 우리는 고단한 역사 속을 역동적으로 관통하며 놀라운 민주화를 이루었습니다. 해임당한 선생님 곁에서 함께 피켓을 들고 선 학생들과 학부형들, 여기에 동참하는 다른 선생님들이 바로 새 시대의 징표입니다. ‘비겁한 침묵’은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과 감동’에다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주체로서의 ‘자율성’이라는 명분까지 보탰으니 저들이 만들어내는 의미 있는 파장은 도미노처럼 퍼져갈 게 확실하다고 봅니다. ‘밖’에 있는 제 눈엔 ‘싸움’의 결말이 환히 보이는데, 저보다 인생도 선배시고, 선생님들 중의 큰 선생님이신 교육감님이 그 ‘안’에서 이번 파장의 출구를 보지 못하시다니요.

징계를 철회하십시오, 교육감님. 이는 사필귀정이니, 다른 누가 아니라 교육감님 스스로 용기를 갖고 명예로운 길로 가시기를 후배로서 간청드립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희망이 되어야 할 교육계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저는 교육감님이 우리 앞에 지혜롭고 신선한 전례를 남겨주실 것을 강력히 요청드리는 것입니다.

박범신/작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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