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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준만칼럼] 국회를 위한 변명

등록 2009-01-04 22:07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준만칼럼
이른바 ‘난장판 국회’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아니 ‘저주’라고 하는 게 옳겠다. 그 저주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회의원들은 한국 사회에서 최악의 저질 집단인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일주일 전 어느 보수 신문은 ‘추락하는 경제 속 멱살잡이하는 세계 최악의 국회’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민주당은 법안을 몸으로 막거나 다수당인 한나라당에 의해 끌려나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2004년 탄핵 직후의 역풍이 불었던 것과 같은 상황이 오길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이 사설은 편파적이지만, 씹어볼 점은 있다.

2004년 3월12일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점잖게 대통령 탄핵안 표결에 응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정치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의원들이 점잖게 표결에 응하는 것과 울부짖고 몸부림치며 저항하는 것이 유권자들의 정치 인식에 그렇게 다른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단 말인가? 물론이다. 후자가 전자에 비해 훨씬 더 좋은 정치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난장판 국회’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 것인가? 아니 ‘난장판 국회’가 꼭 나쁘기만 한 거냐고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

언론과 지식인은 정치를 비판할 때마다 유권자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하지만, 그런 지당한 원론을 넘어선 분석이 필요하다. 유권자들은 바람에 약하고 분위기에 휩쓸리는 경향이 농후하며, 자신들의 투표 행위에 대한 책임의식도 박약하다. 우리는 ‘민심은 천심’이라는 원칙하에 감히 그걸 비판하지 못한다. 다만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그런 속성에 영합하는 행위를 하는 것만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을 뿐이다.

그래서 ‘난장판 국회’의 책임은 유권자들에게 있다는 것인가? 그게 아니다. 정치인이건 유권자건 사람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는 뜻이다. 현 체제하에선 ‘난장판 국회’에 대해 독한 저주를 퍼붓는 순서대로 의인 299명을 뽑아 국회에 들여보낸다 해도 달라질 게 전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문제의 핵심은 개별성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의 ‘초1극 쏠림 체제’다. 이는 오랜 역사를 통해 전 분야에 걸쳐 형성된 한국적 현상이다. ‘서울공화국’ ‘삼성공화국’ ‘서울대의 나라’ 등의 표현이 웅변해주는 현실이다. 그런 ‘초1극 쏠림 체제’ 아래에선 서열이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다. 서열 의식은 대중의 일상적 삶마저 지배하는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뭐든지 등수를 매겨 차별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서열 의식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열만이 있을 뿐이다.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정치인은 ‘다른’ 직업인가? 아니다. ‘출세한’ 직업이다. 물론 정치인들도 그렇게 여긴다. 사회 각계에서 성공해 존경까지 누린 이들이 한사코 금배지를 달기 위해 그 난장판에 뛰어드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국회의원이 되려는 동기부터가 왜곡되었다. 그걸 잘 아는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는 이유도 왜곡되었다. 국회의원 개개인의 대표성이 설 땅이 원초적으로 없는 셈이다.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는 주로 ‘연고’와 ‘반감’과 ‘응징’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 투표 행태는 극단적인 쏠림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쪽을 죽였다가 저쪽을 죽이는 식으로 돌아가면서 죽인다.


유권자들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구 여권을 확실하게 죽였다. 죽여도 너무 죽였다. 지금 그 부작용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중이다. 국회에 돌을 던지더라도 동시에 저주해야 할 것은 서열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인간의 개별성을 존중하지 않는 우리 모두의 의식과 관행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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