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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검찰도 ‘전교조 없는 세상’ 꿈꾸나 / 김종철

등록 2009-01-08 20:02

김종철  논설위원
김종철 논설위원
아침햇발
처음부터 요상했다. 학원업자들(10억원)뿐 아니라 자립형 사립고를 허가받으려는 사람한테도 돈을 받는 등 구린내가 풀풀 나는데도 검찰은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수사를 미적댔다. “개인간의 돈거래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선거에서 떨어진 주경복 후보에 대해서는 “전교조가 선거자금의 70%를 댔다는 얘기가 있더라”는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의 ‘카더라’식 수사 의뢰가 있자마자 바로 다음날부터 수사에 착수했다.

양쪽에 대한 수사 강도도 엄청나게 다르다. 주 후보 쪽에 대해서는 싹쓸이 수사라는 말로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를 도운 혐의로 전교조 교사 20여명을 소환한 데 이어 서울지부 지회장 25명 등 앞으로도 수십명을 더 부른다는 방침이다. 압수수색도 지나치다. 전교조 서울지부 사무실과 5개 지회 사무실, 간부 집 5곳, 온라인 카페를 관리하는 진보네트워크 사무실과 서버업체 등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곳은 다 뒤졌다. 낙선자 쪽에 대해 이렇게 광범하고 집요하게 하는 수사는 처음 봤다. 반면에 공정택 교육감 쪽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솜방망이다. 압수수색은 한 학원장의 사무실과 선거컨설팅업체 등 두 곳에 그쳤으며, 그것도 언론에서 형평성 문제를 여러 차례 지적한 뒤에야 이뤄졌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문제다. 양쪽이 다 같이 선거자금의 대부분을 빌렸다가 선거가 끝난 뒤 갚는 방식을 취했는데도 공 교육감 쪽은 ‘문제 없음’이고, 주 후보 쪽은 ‘문제 많음’이다. 공 교육감 쪽에 돈을 준 사람은 개인이기에 괜찮고, 주 후보 쪽은 사실상 전교조가 주도했기 때문에 단체의 기부를 금지하고 있는 정치자금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상식과는 완전히 거꾸로다. 학원업자와 학교 설립 희망자, 교장 등은 교육청이나 교육감과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공 교육감에게 돈을 준 사람들 중 일부는 이후 승진했으며, 학교설립 허가도 받았다. 돈과 이런 혜택이 관계 있다면 사전수뢰죄가 성립한다. 반면에 주 후보에게 차용증을 받고 돈을 빌려 준 사람은 평교사 800여명(5억9천만원)과 전교조 서울지부(2억1천만원)다. 이들이 교육감 후보에게 기대했을 개인적인 이익이 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자신들이 원하는 교육정책의 추진이었을 것이다. 어느 쪽 돈이 사회적으로 해악이 클지는 명백하다. 그런데도 공 교육감 쪽은 죄다 면죄부가 예상되는 데 비해 주 후보 쪽은 송원재 전교조 서울지부장과 이을재 조직국장 등 이미 2명이 구속됐다. 주 후보도 공모 혐의를 받고 있다. 사회 정의가 물구나무섰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또 있다. 전교조가 주 후보에게 돈을 대여한 것은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에 따른 것이다. 선관위가 합법이라고 한 일을 뒤늦게 검찰이 불법이라면서 잡아넣으면 법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추라는 말인가. 정당이 관여하지 않는 교육감 선거에 정치자금법을 적용하는 데 대한 법적인 논란도 있다.

누구든 현행법을 어겼으면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전교조에 집중하고 있는 검찰의 이번 수사는 검찰권의 공정성에 다시 한번 의문을 품게 한다. 이을재씨는 세밑 구치소에서 쓴 편지에서 “제가 이렇게 묶여 있어야 할 그런 죄를 지은 것 같지는 않다”며 자신이 구속된 배경으로 “전교조 없는 세상이라는 비현실적 목표를 가진” “소수 특권층 세력”을 들었다. 비록 당사자의 항변이기는 하지만, 그의 말에 공감하는 이가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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