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논설위원
유레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정치 저작을 들라면 단연 첫손에 꼽힐 <공산당 선언>(The Communist Manifesto)이 탄생 161돌을 맞는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함께 쓴 이 팸플릿은 1848년 2월21일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출판됐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구유럽의 모든 세력은 이 유령을 사냥하려고 신성동맹을 맺었다”는 서문으로 시작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끝나는 공산당 선언은, 출판 직후부터 유럽을 휩쓸던 혁명적 기운과 맞물리며 격렬한 비난과 찬사의 대상이 됐다.
161년 전에 쓰인 팸플릿이 지금 현실과 얼마나 정확히 들어맞는지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소상인과 소부르주아는 프롤레타리아로 굴러떨어지고, 부르주아 멸망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승리는 피할 수 없는 일이란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의 파국적 금융위기 이후에 <공산당 선언>을 다시 읽어보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다. 계급투쟁이니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니 하는 교조적인 단어의 주술에 묶이지만 않는다면, 자본의 속성과 사회 불평등에 관한 지적은 161년 전에 쓰였다는 사실을 때때로 망각하게 할 정도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유란 오직 상거래의 자유를 뜻한다는 지적은, 고삐 풀린 말처럼 무분별한 자유를 만끽했던 미국 월스트리트를 떠올리게 한다.
올해 연세대의 논술 입시 제시문엔 ‘공산당 선언’이 등장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이 구호의 원작자는 프랑스 여류 사회주의자 플로라 트리스탄이라고 한다)는 요즘 유럽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서 울려 퍼진다.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지만, 그래도 교훈은 준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