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개념없거나 위험하거나 / 김종철

등록 2009-02-19 21:04

김종철 논설위원
김종철 논설위원
아침햇발
한반도에 드리운 먹구름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지난달 남쪽과의 “전면 대결태세”와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관련한 모든 합의사항의 무효”를 연달아 선언한 북한은 미사일 시험발사 준비를 계속하는 등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서해상이나 휴전선 부근에서의 군사적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우리쪽 대응도 매우 ‘단호’하다. 군은 언제든 상황이 벌어지면 상대를 초전에 박살내겠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이상희 국방장관은 지난 16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북한이 도발을 한다면 군은 모든 발생 가능한 상황을 상정해서 현장 지휘관이 현장의 합동 전투력으로 현장에서 최단기간 내에 승리해 작전을 종결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도 17일 통합방위중앙회의를 직접 주재하는 등 단호한 의지를 천명했다.

원론적으로 당연한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위험한 행보다. 북한 함정이 북방한계선(NLL)을 무시하고 남쪽으로 내려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예상해 보자. 우리 해군은 교전수칙에 따라 돌아가라고 경고방송을 한 뒤에 경고사격을 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즉각 사격을 하게 된다. 북쪽이 먼저 공격할 때는 말할 것도 없다. 여기까지는 1999년과 2002년에 있었던 1, 2차 서해교전 상황과 같다.

그러나 3차 교전이 생기면 함대끼리 화력 경쟁을 하고 그칠 것 같지 않다. 남북 관계가 꼬일 대로 꼬여 있는데다 확전을 막을 정치적 채널도 없다. 게다가 현장 지휘관에게 너무 큰 권한이 주어져 있다. 지휘관은 필요하면 포병이나 공군을 동원해 독자적으로 전투를 지휘할 수 있다. 그러잖아도 일선 장병들은 맞붙을 기회가 다시 오면 2차 교전 때 당했던 손실을 되돌려주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 2004년 북쪽 함정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왔을 때 상부에서 자제를 요청할까봐 교신 내용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을 정도다. 따라서 단호하게 대응하라는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공개적인 언행은 한 대 맞으면 두 대, 세 대 때리라는 주문이나 마찬가지다. 자칫 육·해·공군이 동원된 종합 국지전이 벌어지거나 전면전으로도 비화될 수 있다.

전투력이 뛰어날수록 군은 국가의 전략적 목표에 맞춰 적절하게 ‘통제’돼야 한다. 전투에 치중하는 군의 논리와 평화를 지켜야 하는 정치의 논리는 다르며, 전자는 항상 후자에 의해 관리되고 종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민 통제의 핵심 원리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국방장관에게는 용기보다는 냉철함과 현명함이 더 요구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 지도자의 대응은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과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쿠바의 소련 미사일 기지를 폭격하자는 군의 강력한 요청을 거부하고, 대신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해상봉쇄를 택했다. 또 해군의 반발을 누르고, 함정과 백악관 사이에 직통 라인을 개설해 봉쇄 현장의 군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소련과의 막후 협상 중에 쿠바 상공에서 미군 정찰기 한 대가 소련 미사일에 맞아 격추됐을 때도 인내를 거듭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당장 미사일 기지에 보복공격을 가해야 했지만, 장관과 대통령은 명령을 연기했다. 결국 흐루쇼프(흐루시초프) 소련 서기장과의 막후협상이 이뤄졌고, 3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갔던 위기는 평화적으로 해결됐다.

우리 역시 위기에 대한 해법은 ‘강군’에 있지 않다. 오히려 ‘강군’을 감추고 ‘정치’를 내세워야 한다. 그러자면 강하기만 한 국방장관부터 먼저 제어해야 한다.

김종철 논설위원phill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