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아침햇발
나빠진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실정 가운데 하나다. 이 대통령 취임 한 돌을 맞아 <한국일보>가 벌인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들은 정부가 가장 잘못한 분야로 경제(27%)에 이어 남북관계(16.9%)를 꼽았다. 정치(14.1%)·교육(9.8%)보다 앞순위다. <경향신문> 여론조사에서는 남북관계가 나빠진 원인에 대해 이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는 응답이 69.8%(매우 책임 28.3%, 어느 정도 책임 41.5%)나 됐다.
지난 1년 남북관계의 현실은 그 이전과 비교해 보면 극명하게 대비된다. 2007년에 3613명을 기록한 당국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해 한 명도 없었고, 07년 55차례나 열린 남북회담은 지난해 단 한 차례에 그쳤다. 대북 인도적 지원이 중단되고 남북 경협이 갈수록 위축되는 상태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주변에서 긴장이 높아지고 북한은 미사일 시험발사를 공언한다. 짧은 시일에 어떻게 이렇게 나빠질 수 있을지 신기할 정도다.
최근 미국 국방부와 중앙정보국(CIA)이 연이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미국 군산복합체의 음모설이 제기되고 있다. 핵무기와 물질이 북한 밖으로 나가지만 않는다면 북한이 낮은 수준의 핵 보유국이 되더라도 손해가 될 게 없다고 군산복합체는 생각한다는 얘기다. 과거 사례를 보면 그럴 개연성이 없지 않다.
조지 부시 미국 전 행정부는 처음 몇 해 동안 북한에 대해 악의적 무시 정책을 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근본주의적 발상의 이면에는 한반도의 일정한 긴장이 군산복합체에 유리하다는 냉철한 판단이 있었다. 이 기간에 미국과 일본은 미사일방어(MD) 계획을 현실화했고, 미국은 평화헌법 체제의 일본으로부터 이라크 파병을 이끌어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 정권 교체라는 구호는 미국과 일본 강경파의 입지를 넓혀주는 마르지 않는 샘이다.
이제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는 바뀌었지만, 부시 행정부의 근본주의는 이명박 정부에서 계승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이 실패한 체제, 빨리 바뀌어야 할 체제라고 공개적으로 말한다. 부시 행정부가 독선적 선악관을 바탕으로 북한 정권 교체를 지향한 것과 비슷하게, 이 대통령은 북한 정권이 체제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면 남북관계는 없어도 된다고 여긴다. 그 배후에는 북한 체제가 머잖아 무너질 거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정부가 비현실적인 비핵·개방 3000 정책을 고집하고 10·4 및 6·15 선언을 사실상 거부하는 데는 이런 심리가 바탕이 된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 사이 긴장을 활용하는 것도 부시 행정부와 닮았다. 적당한 위협은 안보보수파의 입지를 넓히고 경제위기로부터 국민의 눈을 돌리는 데 도움이 된다.
근본주의적 대북정책 기조는 이제까지 실패했으며 앞으로도 실패할 것이다. 미국과 일본 강경파가 한반도와 거리를 유지하며 이득을 챙기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남북관계가 나빠질수록 더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금강산·개성 관광 중단 등 직접 사업 손실에서부터 불확실성 증가에 따른 코리아 디스카운트 심화, 안보 비용 증가, 본격적 대북 사업 기회 상실, 남남 갈등, 통일 전망 및 정권 정통성 약화, 남북 대립 외교에 따른 국력 손상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북한의 통미봉남 행태를 견제해 달라고 미국에 매달리는 현실은 치욕스럽기까지 하다.
정부가 진정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바란다면 근본주의적 태도부터 청산해야 한다. 북-미 관계 진전이라는 미국발 변수가 영향을 끼치기만을 기다리기에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김지석 논설위원jkim@hani.co.kr
김지석 논설위원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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