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논설위원
유레카
미국에서 현대적 의미의 공식 기자회견을 처음 시작한 이는 1913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첫 기자회견은 기자들만을 상대로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로 진행됐다. 윌슨은 언론의 우호적 보도를 유도하려고 회견을 했다. 그 뒤 대통령 기자회견은 여러 면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1950년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시절부터 기자회견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됐다. 이제 ‘오프 더 레코드’ 회견은 존재할 수 없었고, 연출도 불가능했다. 대통령들은 공세적으로 기자회견을 활용했다. 국정 어젠다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여론의 지지를 끌어모으는 데, 언론과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형식은 매우 유용했다. 그러나 모든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백악관엔 매년 추수감사절 때 대통령이 칠면조를 ‘사면’(요리에 쓰지 않고 풀어줌)해 주는 전통이 있다. 2002년 칠면조를 풀어주러 백악관 뜰에 나온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런 농담을 던졌다. “칠면조가 너무 신경질적으로 불안해하는 거 같다. 아마 기자회견을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부시는 기자회견을 가장 적게 한 대통령으로 꼽힌다. 첫 임기 4년 동안 부시의 단독 기자회견은 16회로, 빌 클린턴의 43회, 아버지 조지 부시의 84회, 로널드 레이건의 26회보다 훨씬 적었다. 이라크와 경제 등 핵심 정책들을 국민 앞에 드러내놓고 언론의 질문을 받는 데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한 돌을 맞았는데, 공식 기자회견은 없다.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취임 한 돌 기자회견을 하지 않은 건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청와대는 “라디오 연설을 통해 국민에게 직접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라디오 연설의 원조인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재임중 무려 1023회나 기자회견을 했다. 소통하는 대통령과 불통하는 대통령의 차이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