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논설위원
아침햇발
두 사람을 비교하면 서로 기분 나빠할지 몰라도 김형오 국회의장과 이용훈 대법원장은 닮은 데가 많다. 먼저, 자기 본연의 할 일을 잊어버린 점이다. 국회와 법원이 왜 있는가. 제왕이 되기 쉬운 대통령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첫째 존재 이유다.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요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이끄는 국회와 법원은 행정부 독주를 제어하기는커녕 정부 쪽과 발맞추기에 바쁘다. 여야 간에 정상적으로 논의하다가도 청와대가 기침만 하면 국회 운영은 엉망이 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미디어 법안 처리가 대표적인 예다. 경제 살리기라는 정부 주장에 여당은 다짜고짜 상임위에 날치기 상정했다. 또, “좌고우면해서는 안 된다”는 대통령의 말이 있자마자 국회의장은 미디어 법안의 직권상정을 추진했다.
법원은 어떤가. 이명박 정부가 가장 관심을 기울인 촛불시위 재판을 특정 판사에게 몰아주는가 하면 심지어 법원장이 판사들에게 비밀리에 이메일을 보내 위헌 제청에 상관없이 재판을 하라고 요구했다. 촛불 피의자들을 벌주라는 뜻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법원이 전례 없이 재판에 간섭할 즈음에 청와대는 법질서 회복을 통치 구호로 내세웠다. 또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신 대법관 문제에 대해 “할 수 있는 얘기”라고 감쌌다. 우연만일까?
문제가 터진 뒤 본질을 흐리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도 비슷하다. 김 의장은 온갖 기물을 동원해 회의실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등 국회를 깽판장으로 만든 여당에 대해서는 오불관언이다. 반면 여당의 단독 운영을 막는 과정에서 쇠망치를 들고 명패를 내동이치고 온몸으로 저항한 야당 의원한테는 국회사무처를 내세워 검찰에 고발하는 등 회초리를 들었다. 이 대법원장은 판사들을 압박한 신영철 대법관의 잘못을 준엄하게 비판하기는커녕 “내가 말한 원칙과 일맥상통한다”며 두둔했다. 또, 법원장이 보낸 전자우편에 “판사들이 압박을 받아서 되겠느냐”며 오히려 문제 제기한 판사들을 꾸짖었다.
더구나 두 수장의 이런 태도는 자신들이 한 약속이나 다짐과 정반대된다. 김 의장은 지난 1월 국회 때만 해도 “미디어법 강행은 국민을 우습게 본 것”이라며 청와대와 여당의 밀어붙이기에 제동을 걸었다. 국회를 대화와 타협의 장으로 이끌어가려는 그의 노력에 국민은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그는 여당 최고위원들과 호텔에서 비밀 회동을 하는 등 하루아침에 변했다. 결국, 미디어법을 4개월 뒤로 미루자던 자신의 중재안마저 팽개치고 여권의 총대를 멨다.
이 대법원장도 취임 직후부터 “검찰 수사 기록을 던져 버려라”며 공판 중심주의와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엄벌을 강조해 기대를 모았다. ‘사법 살인’ 등 독재 정권의 뒤치다꺼리를 한 법원의 과거사를 반성하는 용기도 보였다. 하지만 법원은 재벌 총수 판결에서 오락가락했으며, 삼성 재판부 변경은 의혹투성이다. 특히 전원합의체를 활성화하겠다는 약속을 뒤집어 가면서까지 삼성 재판에서는 애써 전원합의체를 외면하고 있다. 신영철 사건에서는 법원이 정치권력과 독립할 의지가 있는지에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김 의장은 야당에 의해 국회 윤리위에 제소됐고, 이 대법원장은 내부 조사를 받았다. 입법부와 사법부 수장으로서 개인적 수모일 뿐 아니라 제도로서의 국회와 법원의 위기다.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저버린 탓이다. 두 사람은 청와대가 아니라 국민 곁에 서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당장 물러나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 틀을 깨면 책임져야 한다는 교훈이라도 남는다.
김종철 논설위원phillkim@hani.co.kr
김종철 논설위원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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