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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도쿄에서] “큰 정치를 해야 한다” / 김도형

등록 2009-05-31 21:46수정 2009-09-14 15:52

김도형 특파원
김도형 특파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에 한 여러가지 파격 발언 중에서도 강도가 센 것이 ‘공산당 허용론’이다. 일본 방문 마지막날인 2003년 6월9일 중의원 의장 주최 간담회에서 일본공산당의 시이 가즈오 위원장에게 “나는 한국에서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공산당과 교류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나일 것이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야당과 보수언론은 때를 만난 듯 한목소리로 거세게 비판했다. 어쩌면 빨치산 장인을 둔 ‘눈엣가시 같은’ 대통령의 공산당 허용 발언은 보수세력에게는 절호의 공격 재료였는지도 모른다. 논란이 일자 당시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공산당 합법화는 서구나 일본처럼 제도화 테두리에서 활동하고 제도권에 진출한 그런 정당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일본공산당은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전공투 학생운동의 주역이었던 신좌익 학생들의 주요 타도 대상이 될 정도로 진작부터 의회주의를 표방한 제도정당의 하나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산당 허용론만큼 노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관과 정치철학을 잘 드러내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사상의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실천이라는 생각이 그의 말 속에서 쉽게 읽히기 때문이다.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려는 원칙주의자의 면모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로부터 3년3개월 뒤인 2006년 9월5일 시이 위원장은 일본공산당 당수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정당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열린 자세가 없었으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일본으로 돌아간 뒤인 9월25일 당 보고대회에서 “한국은 현재 민주주의가 다이내믹하게 발전하고 있다”며 “적어도 ‘반공의 벽’은 일본공산당과의 교류에서는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너지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이 위원장의 평가와 달리, 노 전 대통령은 재임 내내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들로부터 좌파 정책을 펴고 있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이를 받아 일부 일본 언론도 참여정부에 대해 좌파, 친북 정권이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렇다면 그는 정말 좌파 대통령이었을까? 며칠 전 한국 정치에 정통한 일본 학자 4명에게 그의 재임시 정책 평가를 물어봤는데 좌파 정책을 펼쳤다고 주장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는 “고용정책 면에서 김대중 정권 때보다 훨씬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많이 펼쳤다”고 진단했다.

노 전 대통령이 좌파든 아니든 일본공산당 안에서는 그의 때아닌 죽음을 애석해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시이 위원장은 지난 27일 주일 한국대사관을 방문해 조문한 뒤 권철현 대사에게 “돌연한 부음에 놀랍고 슬프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노무현의 광적인 팬’이라는 일본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의 한 기자는 전화통화에서 “어젯밤 울적해 술을 마시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도전해서 쓰러져도 좌절하지 않고 정면돌파하는 게 우리 공산당과 같아서 공감하는 부분이다. 서민적인 감성으로 행동하고 말하는 부분은 일본 정치인들에게선 보기 힘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8일 “보십시오. 시청 앞에서 분향하는 것조차 막고 있습니다”라며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개탄했다. 공산당과의 교류까지도 허용한 한국의 다이내믹한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찬사가 나온 지 3년도 안 된 시점이다. 기미야 교수는 “큰 정치를 해야 한다”고 이명박 정부에 주문했다.


김도형 특파원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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