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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준만칼럼] ‘공모 사기극’ 이제 그만하자

등록 2009-08-02 19:01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최근 정부·여당이 <문화방송>의 대주주이자 최고의결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를 공모한다고 해놓고선 사실상 내정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게 뉴스가 되다니, 대한민국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증거로 여겨야 할까. 방문진뿐만 아니라 많은 공적기관의 고위직은 그런 식으로 뽑는 게 오랜 전통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그런 전통의 과정이 밀실 밖으로 새어 나오면 뉴스가 될 정도로 논란이 된다는 게 흥미롭다.

공모를 내정으로 대체하는 사기극은 이명박 정권이 처음 시도한 건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도 성행했던 짓이다. 공모와 내정의 차이는 무엇인가? 권력에 대한 충성도의 차이다. 전자에 의해 뽑힌 사람은 권력에 충성하지 않아도 되지만, 후자에 의해 뽑힌 사람은 권력에 충성해야 한다. 한국 정치권력의 가장 큰 죄악은 정치적 공정과 중립을 지켜야 할 영역을 내정의 과정을 통해 정치화시킴으로써 합리적 판단과 소통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박탈한다는 데에 있다.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제대로 꿰뚫어보고 시정을 촉구한 선구자가 있었으니, 바로 양문석 언론연대 사무총장이다. 그는 3년 전 “지금 진행되고 있는 방송계 인사 선임과정은 ‘개판’이며, 이를 보는 사람들의 심정은 ‘목불인견’”이라고 했다. 또 그는 지난 5월 “올가을 엠비시, 케이비에스, 이비에스 등 공영방송 이사만 29석이 나온다. 그런 부분에 미련을 두면서 (일부 미디어위원들이) 자신의 활동과 토론 내용을 맞추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밖에선 있다”며 “여야 추천 위원 모두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활동 종료 이후 1년 동안 언론 관련 임용직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양문석이 아니다. 그는 공영방송 이사 자리의 ‘과도한 풍요’를 지적한다. 겸직이 가능한 <한국방송> 이사장은 활동 경비와 회의 참석 수당 등을 포함해 월 700여만원, 이사들은 월 450여만원을 받는다. 방문진 이사장의 연봉은 1억2000만원이고 이사들의 보수도 5000만원 가까이 된다. 양문석은 “권한과 업무, 연봉만 따진다면 ‘천하 보직 중 이런 보직은 없는 자리’”라며 개혁을 촉구했다.

정부는 물론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이 그런 개혁을 외면해 온 이유는 간단하다. 공적기관 고위직의 풍요를 권력에 충성하는 대가로 베풀 수 있는 은전의 도구로 활용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간 “우리 편 이겨라”만 외치면서 가급적 많은 ‘우리 편’을 요직에 심어놓을 생각만 했지,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세우고 지킬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공영방송을 포함한 공적기관 내부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 홀대가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도 바로 이런 과잉 정치화 때문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잡자. 우선 공영방송 이사 자리부터 무보수 명예직으로 하자. 그렇게 해서 절약되는 돈을 공영방송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에 쓰자. 공영방송 이사는 서로 안 하겠다고 하는 게 정상이다. 교통비 정도의 실비만 준다면, 그래도 지금처럼 그걸 서로 하겠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까. 하겠다는 사람이 전혀 없으면 어떡하느냐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공영방송 개혁에 진정한 뜻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 돈 들여가면서라도 할 것이다.

‘공모 사기극’은 한국인의 인성을 타락시키는 중대 범죄행위다. 정권에 줄을 선 각계의 전문가들에게 고위 공직을 제공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의식부터 바꿔야 한다. 권력을 향한 줄서기와 줄세우기가 창궐하는 나라는 정치과잉으로 인한 분열과 갈등의 수렁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진정한 공모제의 확대로 ‘선거의 투기도박화’와 ‘줄의 이권화’를 끝장내야 한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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