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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도쿄에서] 부러운 일본 고교의 부카쓰 / 김도형

등록 2009-09-28 21:43

김도형 특파원
김도형 특파원
일본에서 200만권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소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읽다가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여자 주인공인 아오마메와 오쓰카 다마키가 고교 시절 소프트볼 경기를 통해 둘도 없는 친구로 발전한 부분이다. 팀을 도쿄대회 결승전까지 진출시킬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던 다마키는 명문 사립대학 법학과에 진학해서 소프트볼을 관두고 법률가를 꿈꾼다. 고교 시절 소프트볼로 날을 지샌 체육소녀가 자력으로 명문대학에 진학해 법률가를 꿈꾸다니? 약간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처럼 읽혔다.

그러나 최근 소설 속 이야기의 현실성을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 25일 도쿄학예대학 부속고교에서 실시된 한국인 역사·지리 교사의 방문수업이 끝난 뒤 학교 쪽이 ‘부카쓰’(部活·동아리활동) 현장을 안내해주었다. 오후 5시께 수업이 끝난 뒤 학생들이 검도, 테니스, 오케스트라, 컴퓨터, 물리·화학 등 30여개 교실에서 한두 시간씩 땀을 흘리며 활발하게 각자의 취미활동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현장을 안내하던 교사에게 부카쓰에 모두 의무적으로 참가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전체 학생 중 80%가 부카쓰에 참가한다. 의무적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학년 300명 학생 중 일본 최고 명문대학인 도쿄대학에 한 해 80여명(재학생 50여명)이 합격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고교의 입학 경쟁률이 10 대 1이 넘는다고 하니 이곳 학생들의 입시 스트레스도 어느 정도일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곳 학생들은 대학입시의 중압감에 따른 스트레스를 운동이나 취미활동으로 해소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부러움이 앞섰다. 자연스럽게 한국 학생들과 학부모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입시학원을 향해 뿔뿔이 흩어지거나 입시의 중압감을 해소하기 위해 컴퓨터방 또는 자신의 방에 처박혀 컴퓨터게임에 몰두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도 부카쓰 같은 해방구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기자의 개인적 체험도 있다. 두 아들 모두 중학교에 입학하자 컴퓨터게임에 빠져 무던히 속을 썩였다. 지금도 군에 있는 큰아들과 대학 재학 중인 작은아들은 휴가나 방학 때 집에 오면 컴퓨터 전원부터 켠다. 큰아들이 중학교 때 같이 달리기하자고 반강제로 운동을 시켰지만 “재미없다”며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집에 돌아간 적도 있다.

일본에서도 사이버세계에 빠진 아이들의 문제는 심각하다. 초등학생마저 휴대전화 만남 사이트를 통해 원조교제 매춘을 하다 적발됐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지메(집단따돌림)와 장기등교거부 문제도 고질화된 지 오래다. 그러나 우리나라 아이들처럼 현실세계이든 가상세계이든 모두가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내몰림을 당하는 것 같지는 않다. 소설 <1Q84>에서 아오마메와 다마키가 소프트볼을 통해 끈끈한 우정을 다진 것처럼, 일본의 부카쓰는 단순히 입시 스트레스 해소뿐 아니라 젊음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또래끼리의 우정과 협동심을 다질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본 일본 남자 고등학생들의 부카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남학생들이 방학 내내 여성의 경기인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을 연마해 문화제에서 멋진 장면을 연출한 뒤 매니저 역을 맡은 여학생에게 각자 감사의 뜻을 전하는 장면이었다.

일본 중·고교의 부카쓰는 1972~1973년 필수과목으로 의무화됐다가 2002~2003년 자발적 선택 과목으로 변경됐으나 지금도 활발하게 운용되고 있다.

김도형 특파원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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