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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준만칼럼] 세종시는 ‘먹튀’의 문제다

등록 2009-10-04 20:33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정운찬 국무총리는 취임 첫날 행정복합도시 세종시 논란에 대해 “과천 같은 도시로 만들 것이냐, 송도 같은 도시로 만들 것이냐에 대해 세심하고 넓은 고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그 이전에 정권의 ‘먹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고민을 우리 모두 해보면 좋겠다.

‘먹튀’란 무엇인가? 먹고 튀는 것이다. 속된 말이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근시안적 기회주의를 지적하는 최상의 표현이다. 피부에 와 닿는 실감을 위해 계속 속된 말을 써보자. 5년짜리 정권에게 세종시 사업은 ‘남는 장사’가 아니다. 국토 균형발전의 과실은 훗날 그것이 완성되었을 때 들어선 정권이 챙기는 것이지, 그걸 추진하는 정권은 손해만 보게 돼 있다.

그렇다면 국토 균형발전에 목숨을 건 것처럼 보였던 노무현 정권은 어떻게 볼 것인가? 많은 이들이 노 정권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균형발전 정책을 꼽는다. 정권보다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나는 이 문제로 노 정권 시절 여러 차례 뜨거운 논쟁을 벌인 바 있는데, 당시 내 주장은 노 정권이 정략적 고려를 너무 앞세운다는 것이었다.

정권은 바뀌기 마련이다. 바뀐 정권이 균형발전 정책을 뒤엎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노 정권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대못질’을 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성공하지도 못했거니와 그건 올바른 방법도 아니었다. 스스로 세종시 사업을 포함한 균형발전 정책의 단기적 손실과 부작용 등을 밝히고 장기적 국익을 국민 모두에게 납득시키면서 성공을 위한 중지를 초당파적으로 모아야 했다.

그러나 노 정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단기적 손실과 부작용을 외면하거나 감추려고 애썼다. 교육정책과 수도권 부동산 정책은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쪽으로 나갔다. 노 정권의 가장 큰 과오는 균형발전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한 데에 있다. 현실적인 정치세력으로서 선거 때 ‘재미’를 본 것까진 탓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재미를 계속 우선시해선 안 될 일이었다.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교육정책이 뒤따라 주지 않으면, 세종시는 물론 전국 각지에 세워질 혁신도시도 주말마다 수도권을 왕래하는 교통량만 폭증시키는 ‘유령도시’가 될 수밖에 없다. 세종시 문제만 따로 떼내어 벌이는 논쟁에서 그 반대자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주요 근거 중의 하나다. 그런 근거를 확보한 세종시 반대자들은 지금 온갖 궤변을 일삼고 있다. 심지어 한국의 수도권 집중이 심하지 않다는 해괴한 주장까지 등장하고 있는 판국이다.

지금 이명박 정권의 세종시 정책은 ‘먹튀’ 정책의 전형이다. 선거 땐 충청권의 반발을 우려해 원안대로의 실천을 수없이 약속했다가, 소기의 과실을 챙긴 뒤 이젠 ‘뒷간의 법칙’에 따라 180도 표변해 딴소리를 해대고 있다. 이 정권이 진실로 애국적 견지에서 세종시 사업에 문제가 많다고 판단했으면, 균형발전의 대의를 수용하는 걸 전제로 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사업 수정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냈어야 했다. 세종시는 ‘과천이냐, 송도냐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장기적인 국익을 내팽개친 채 단기적인 정권의 이익을 추구하는 ‘먹튀’를 우리 국민이 언제까지 용인할 것이냐의 문제다.

그 문제를 다룰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당파적 시각이다. 노 정권의 모델과 정서로 이 정권의 ‘먹튀’를 견제하거나 응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정권이 그걸 역이용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세종시 건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반대자들의 비판을 선점해 스스로 밝히면서 구체적 대안과 더 큰 틀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게 ‘먹튀’에 대한 유일한 견제책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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