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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준만칼럼] ‘공공 암묵지’ 활용을 위해

등록 2009-10-25 18:51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지식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여건과 정도에 따라 ‘명시지’와 ‘암묵지’로 나눌 수 있다. 명시지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지식이다. 학교나 책에서 배울 수 있는 지식의 전형이다. 이런 명시지에 관한 한 한국은 세계적인 지식 강국이다. 불타는 향학열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기부 문화가 미성숙함에도 거액의 기부 행위가 이뤄졌다 하면 대부분 학교로 몰린다. 배움에 대한 한(恨)을 갖고 있으며 여전히 그 한을 키우고 있는 한국인의 뜨거운 지식 사랑은 다른 나라들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암묵지로 들어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암묵지란 어머니의 ‘손맛’처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지식이다. 지도자가 특정 조직을 통솔하는 법이나 기능공의 일솜씨도 암묵지에 속한다. 빼어난 맛을 자랑하는 무슨 ‘원조’ 음식점의 할머니가 그 비법은 며느리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속설처럼, 우리는 암묵지를 비밀로 여겨 자기 혼자 소중히 간직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일본 기업들의 성공 비결을 암묵지 공유에서 찾는다. 한국에서도 삼성 등 일부 기업들이 직원들 사이의 암묵지 공유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기업에선 암묵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꽤 발달한 것 같은데, 공공 분야로 가면 전혀 딴 세상이다. 암묵지를 저주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암묵지 공유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장관이나 공기업 사장은 수명이 짧은 자리임에도 전임자가 체득한 암묵지는 후임자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사적으로 만나 밥 먹고 술 마시면서 듣는 이야기는 있겠지만, 그게 전부다. 이렇다 할 지식과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업무와 조직문화를 제대로 파악할 때쯤이면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가 어렵게 얻은 암묵지는 다시 사장된다. 이런 시행착오의 악순환이 유발하는 사회적 비용을 국가적으로 합산해보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이런 공적 낭비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당파싸움과 그에 따른 사실상의 밥그릇 싸움 때문이다. 감정적 대립과 충돌까지 가세해 업무의 기본적인 인수인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전임자의 업적은 공과의 구분조차 없이 무조건 청산과 척결 대상이 된다. 그러니 굳이 암묵지를 공유할 필요조차 없는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 기업의 최대 경쟁력은 한 사람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황제경영’이라는 역설이 성립할 수 있다. 당파싸움이 덜해 암묵지 공유의 동기부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거 이대로 좋은가? 바꿔보자. 참여정부 시절 공기업 감사를 지낸 강동원씨가 최근 출간한 <공기업 판도라의 상자: ‘반칙의 관행’에 반기를 든 감사일지>(전 2권)는 그래서 반갑다. 이런 작업이 왕성하게 이루어지면 좋겠다. 정치 분야의 경우도 ‘기간당원제’를 추진했던 주인공들이 정당 개혁을 위한 암묵지를 책으로 낼 수 있지 않을까. 필자가 당파성을 배제하고 이념과 정치성향의 차이를 넘어서 사회적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게 하겠다는 의지만 갖는다면 책으로 쓸 수 있는 암묵지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다만 문제는 그런 암묵지를 책으로 낼 수 있는가 하는 출판의 시장논리일 텐데, 바로 여기서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기금 조성이 우선이다. 가칭 ‘공공 암묵지 활용 위원회’ 같은 민간기구를 만들어 공정하고 투명한 출판 지원 사업을 펼치는 게 어떨까. 위원회가 너무 많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이런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사업을 위한 위원회라면 다다익선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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