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언론인
1950년대 초, 조지프 매카시 미국 상원의원은 ‘빨갱이 마녀사냥’으로 미국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미국 사회 곳곳에 빨갱이가 활보하고 다닌다며 이들 사냥에 앞장섰다. 그가 가장 즐겨 쓴 수법은 무슨 대단한 비밀이 들어 있는 듯 서류봉투 하나를 흔들면서, 예컨대 “여기 국무부에서 맹활약중인 205명의 공산당원 명단이 있어!”라고 외쳐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봉투 속에는 공산당원 명단이나, 무슨 대단한 비밀정보가 들어 있기는커녕, 2달러만 주면 누구나 살 수 있는 미국 상원 어느 위원회의 평범한 청문회 자료가 들어 있었다.
4년 동안 매카시 선풍으로 미국 사회가 공포에 떨고 있을 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인격살해를 당했을 때, 매카시의 실체를 해부하고 마침내는 그가 몰락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인물이 <시비에스> 방송의 에드워드 머로 기자였다. 당시 미국 언론은 대부분 매카시의 주장을 그냥 전달하면서 마녀사냥의 공포를 확대재생산하는 일에 기여했다. 그러나 머로 기자는 그러지 않았다. 매카시의 주장을 먼저 육성으로 내보내고, 그다음 매카시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는 내용을 보도했다. 공산당원 명단이 들어 있다며 흔들어대는 서류봉투 안에는 실제로 상원 위원회의 평범한 자료가 들어 있다고 폭로한 것도 머로 기자였다.
지금부터 50여년 전의 미국 이야기를 한 이유는 매카시의 수법과 지금 한국 정치검찰의 작태가 겹쳐지고, 검찰이 주는 먹이를 그냥 덥석덥석 받아먹는 데 그치지 않고 검찰의 논리와 틀을 확대재생산하는 한국 언론의 행태가 머로의 치열한 기자정신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검사님, 저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좀 살려 주십시오.” 도대체 곽영욱 전 남동발전 사장이 검찰에서 무슨 혹독한 일을 당했기에 그렇게도 절박하고 처절하게 외치게 되었는지, 한국 언론은 (심지어 진보언론이라 칭하는 곳에서조차도) 거의 외면했다. 그리고 그 비정상적 상황에 놓인 인사의 주장에 의존하여 전 총리를 체포했고, 그 소란 중에 안원구 국세청 국장의 폭탄발언과 도곡동 땅 문제, 효성 사건 등은 증발해버렸다.
이 과정에서 검찰과 언론은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 때처럼 검·언 복합체의 한 덩어리로 작용했다. 미국의 산·군 복합체(군수산업과 군부)가 동서 대결과 냉전 확대의 논리를 확대재생산하는 일에 하나이던 것처럼, 한국의 검찰과 언론은 그렇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한 덩어리가 되어 마녀사냥에 나섰다.
지난해 <한국방송> 사장 해임 과정에서 나 자신도 검·언 복합체의 전면공세와 그 무자비한 행태를 직접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한 개인의 인격이 어떻게 무참하게 파괴되고 황폐화되는지 겪어 봐서 안다. 그러나 내가 겪은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한명숙 전 총리가 당한 것(그리고 지금 당하고 있는 것)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다. 그 무게도 다르고, 파헤치는 범위도 다르고, 이로 인해 날벼락 맞듯 고초를 당하고 겁박을 당하는 친지, 주변 인사들이 겪는 고통의 크기도 비교가 안 된다. 오죽했으면 노 전 대통령이 유서 첫머리에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고 했을까.
검찰 권력, 언론 권력을 어떻게 해체하는가, 검·언 복합체를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숙제를 풀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가 참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올해의 처절한 사건들을 통해서 다시 깨닫게 되는 절박한 과제다.
그렇게 사람을 괴롭히고 박해했던 매카시는 알코올 중독으로 마흔아홉에 죽었다.
정연주 언론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