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언론인
춤을 추듯 하는 여론조사에 휘둘리는 모양새를 보니, 불과 2년 반 전의 일도 잊어버린 모양이다. 특히 언론이 그렇다. 2년 반 전, 6·2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 선거에서 여론조사가 얼마나 터무니없었던가. 불과 선거 2주 전에 나왔던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는 민주당 한명숙 후보에게 적게는 11.9%포인트(<조선일보> 오 47% - 한 35.1%), 많게는 22.8%포인트(<중앙일보> 오 50.8% - 한 28%) 리드했다. 이 여론조사대로라면 선거는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실제 민주당 조직은 짙은 패배의식과 낙담에 빠져 일손을 놓아버렸다. 적극적인 캠페인은커녕 투표 독려도 제대로 안 했다. 그런데 결과는 오세훈 후보가 강남3구 몰표에 힘입어 간신히 0.6%포인트 차로 이겼다.
서울뿐 아니다. 인천의 송영길 후보, 강원도의 이광재 후보, 이듬해 최문순 후보도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많게는 20%포인트 안팎으로 뒤지는 것으로 나왔는데 모두 당선되었다.
올해 대선에서도 여론조사가 또 춤을 춘다. 지난 6일 나온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 표차는 0.2%포인트 차이(박 43.5% - 문 43.3%)인데, 이보다 사흘 전 나온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는 무려 10.3%포인트 차이(박 48.1% - 문 37.8%)가 났다.
개그콘서트 표현을 빌리면 “이것들 왜 이러는 걸까”. 답은 여론조사 자체의 구조적 한계다. 4000만명의 유권자 가운데 극소수인 1000명을 표본으로 뽑아 조사한다. 제주도의 경우 표본 수는 11명이다. 11명이 43만명의 제주도 유권자를 대변하는 거다. 이런 구조적 한계에다, 조사 방법, 조사 대상, 조사 주체, 응답률 등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는 춤을 춘다. 특히 올해처럼 ‘안철수 요인’으로 여론이 출렁일 때는 전체를 대표하는 정확한 표본 추출이 불가능하다. 어떻게 11명의 조사로 ‘제주도 민심’을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
미국의 한 통계학 교수는 여론조사와 통계 만드는 작업을 “불빛 하나 없는 새카만 방에 있는 까만 고양이를 찾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작업 과정은 마치 온갖 내장과 찌꺼기를 갈아서 만드는 소시지 제조 공정 같아서, 내용을 들여다보면 도저히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방송(KBS) 사장 시절, 아침에 출근하면 전날 프로그램 성적표인 시청률표 두 개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두 개의 시청률 조사기관에서 각자 3000가구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였다. 그렇게 매일 반복하는 조사인데도 두 개의 시청률 결과는 크게 달랐다. 드라마도 그렇고, ‘9시 뉴스’도 그랬다. 심할 때는 5~6%포인트 차이가 났다. 표본이 다르다 보니 그런 차이가 났다. ‘참고’일 뿐인 여론조사에 압도당하지 말라고 긴 얘기를 했다.
올 대선은 안철수 전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적극 지원하고, 아울러 시민사회도 가세하면서 마침내 민주진보개혁 세력이 대연합을 하게 되었다. 수구보수도 새누리당 세력에다 김영삼, 김종필, 이회창, 이인제 등 구시대 인물들이 총가세하면서 수구보수 대연합으로 뭉쳤다. 말 그대로 건곤일척의 대회전이다. 박빙의 승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 결과는 우리 사회에 결정적 변곡점이 된다. 변화와 새것을 싫어하는 유전인자를 가진, 그래서 과거 이념에 갇혀 꼼짝 않는, 그리고 강자와 가진 자, 자본 등 1%를 대변해온 수구보수의 과거 세력이 다시 권력구조를 그대로 세습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새 정치, 참 평등, 블라인드 면접과 같은 공정한 기회 등을 하겠다는 민주진보개혁 세력이 미래를 위한 새판을 짜게 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다.
투표율이 관건인데, 수구보수는 그걸 낮추려고 별짓 다 한다. 투표시간 연장도 막고, 흑색선전에다 인신공격, 막말 등으로 정치혐오증을 부채질한다. 이런저런 여론조사 결과를 들먹이며 “200만표 차 압승” 등의 심리전까지 펼치고 있다.
미래세대인 2030이 이런 수구장벽을 돌파하고서 미래를 위해 투표에 적극 참여하면, 그래서 자신의 삶과 역사의 주인이 되면, 세상은 그냥 바뀐다.
정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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