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논설위원
자기가 수사했던 사건이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 해당 검사의 심정은 어떨까. “엄청나게 기분 나쁘다.” 한 부장급 검사의 답변은 너무나 간단했다. 사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그 상황에서 기분 좋을 검사가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의문이 하나 남는다. 기분 나쁜 것이야 본인 사정이고, 그 검사는 뭔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 경우 책임을 묻는 절차가 있긴 하다. 대검 감찰부가 조사에 들어가 수사 검사의 판단이 잘못된 것인지, 공판 검사가 잘못 대처한 것인지, 아니면 재판부의 판단이 검찰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것인지를 가린다. 그래서 수사 검사 쪽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 경우에는 본인에게 통보하고 인사자료로 활용하도록 돼 있다.
수사든 판결이든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언제나 오류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하지만 특정 검사가 유난히 무죄 판결률이 높다면 그 검사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판사들이 내 사건만 유독 잘못된 판결을 하고 있다”는 변명은 결코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무죄 판결률이 높은 검사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는 검찰 내부 인사 방침도 그래서 있을 것이다.
요즘 잇따르는 무죄 판결 퍼레이드도 이 공식에 대입해 보면 쉽게 해석이 나온다. 현 정권 출범 이후 검찰의 전체 성적이 갑자기 곤두박질친 이유는 뭘까. 판사들의 이념적 성향이 하루아침에 변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권의 입맛에 맞춘 검찰의 무리한 기소 남발 때문일까. 해답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다. 작금의 사태를 놓고 검찰 수뇌부가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고 사법부를 욕하는 것은 무죄율이 높은 어떤 검사가 판사들 탓만 하는 것과 똑같다.
지금 검찰이 앓고 있는 병은 심각한 수준이다. 일반의 상식적 법 감정과 절연된 감각 마비증, 삼권분립의 원칙도 무시하는 과대망상증, 자신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우기는 무오류 집착증 등 여러 합병증을 앓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걱정스러운 증세는 창피함을 모르는 병이다. 나쁜 성적표를 받고서도 자신의 실력 부족을 반성하기는커녕 시험관 탓만 하는 학생처럼 구제불능도 없다.
무죄 판결이 나올 경우 수사 검사에게 불이익을 주는 문제로 돌아가 보자.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무죄율이 높은 검사에게 인사상 불이익이 내려지는지 모르겠으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국사건 등에서는 오히려 정반대다. 인사상 불이익은커녕 도리어 승승장구하는 게 현실이다. 검찰 수뇌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등이 나서서 경고하고 질책을 해도 모자랄 판인데 오히려 위로·격려하기 바쁘다. 하기야 무리한 기소 남발의 진원지가 그쪽 동네인데 누가 누구를 나무라고 누구한테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는가.
문제는 지금도 무리한 기소는 여전히 남발되고 있고, 앞으로 무죄 판결이 나도 검찰에서는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리라는 점이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의 경우도 그렇다. 현시점에서 유무죄 중 어느 쪽으로 판결이 내려질지는 속단하기 힘들다. 다만 뇌물이 오갔다는 결정적 물증이 없는 점이나, 돈을 주었다고 주장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 진술의 신빙성 문제, 이런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례 등을 고려해 볼 때 무죄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그런데 무죄가 나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그동안 검찰이 기소한 사건 중에는 나중에 무죄 판결이 나든 말든 기소만으로 효과를 톡톡히 누린 ‘먹튀 사건’도 수없이 많았다. 이 사건도 그런 사건들의 재판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무죄에 대한 단죄 문제를 심각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다.
김종구 논설위원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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