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실장
바다와 육지와 국제무대에서 안보·북한과 관련된 굵직한 사안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천안함 참사, 금강산 관광 등 남북관계 갈등, 난항을 겪는 북한 핵문제가 그것이다. 모두 이명박 정부의 성패를 가름할 잠재력을 가진 사안이다. 천안함 참사는 본질적으로 ‘우리 군함이 우리 해역에서 침몰해 우리 군인 46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사건’이다. 참사 원인이 무엇이든 가장 큰 책임은 우리 군과 정부에 있다. 원인과 관련해 초기에는 폭발설과 비폭발설이 맞섰으나 이제는 폭발을 전제로 공격설과 사고설로 나뉜다. 일부 보수세력이 북한의 어뢰공격설을 조직적으로 유포하고 있으나 기뢰 등 다른 원인으로 폭발이 있었을 가능성도 적잖다. 북한 공격설이 입증돼도 참사 자체에 대한 우리 군과 정부의 책임은 줄어들지 않는다. 북한이 최근 금강산 관광지구내 남쪽 시설 일부를 폐쇄한 것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남북 갈등이 막바지 단계로 접어드는 신호다. 정부는 지난해 중반 이후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적극 요구하자 이를 오히려 북한 체제가 취약해진 증거로 받아들였다. 이후 정부 태도는 더 강경해지고 북한 급변사태론에 대한 언급이 잦아졌다. 현 집권세력이 애초 ‘통일부가 왜 필요한가’라고 했던 사고방식과 일맥상통하는 태도다. 이제는 마지막 남은 경협 현장인 개성공단의 앞날에도 그림자가 드리운다. 북한 핵문제는 갈수록 더 꼬이고 있다. 천안함 참사 여파까지 겹치면서 6자회담 재개 시점은 더 멀어졌다. 정부는 여전히 압박에 치중하고, 회담 재개의 열쇠를 쥔 미국 역시 북한 핵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여기지 않는 어정쩡한 태도를 유지한다. ‘천안함 원인 규명이 우선’이라는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발언은 다소 성급하다. 조사 결과를 예단해 미리부터 회담 재개 동력을 떨어뜨릴 이유는 없다. 그러는 동안 북한은 핵 개발 노력을 더 강화할 것이다. 분명 북한 핵문제는 더 악화하고 있다. 세 사안은 서로 얽혀 있다. 첫번째 공통분모는 정부의 신뢰 문제다. 정부와 군은 천안함 참사로 드러난 취약한 위기대응능력과 뭔가 끝없이 숨기는 듯한 태도 등으로 이미 국민 신뢰를 잃었다. 남북관계와 핵문제에서도 정부는 적극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기보다는 북한 체제의 붕괴라는 주관적 기대에 치우쳐 있다. 국민의 불신은 정부에 두고두고 짐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세 사안은 안보·통일·외교 정책의 총체적인 실패를 보여준다. 정부는 해마다 북한의 전체 국내총생산에 맞먹는 국방비를 쓴다. 그럼에도 지휘체계와 군 장비·병력 운용 등에서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음이 천안함 참사를 통해 드러났다. 여기에다 남북관계를 가볍게 여기는 정책기조는 남북 갈등을 키우는 것은 물론 돌발사태가 생겼을 때 선택 폭을 좁힌다. 서해 상황이 과거보다 훨씬 더 불안해진 것도 강경 대북정책 기조와 무관하지 않다. 선핵폐기론과 그랜드바겐 역시 핵문제 해결은커녕 핵협상을 지체시키는 데 기여한다. 정부는 왜 지금 여러 사안이 동시에 불거지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남북이 분단돼 있는 한 북한이라는 존재는 우리 현실에 다양하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가장 나쁜 태도는 북한을 붕괴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거나 아예 무시하거나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정부 정책기조는 이에 가깝다. 이대로 간다면 남은 임기 동안 모든 사태가 더 나빠질 것이다. 천안함 참사가 다른 안보·북한 관련 사안들을 압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조사 결과 북한의 관여가 확인되더라도 정부의 정책 실패가 덮이지 않음은 물론이다. 정책 전환과 인적 쇄신이 절실한 때다. 늦었더라도 철저하게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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