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김호의 궁지] ‘게임’의 진화

등록 2010-07-07 23:24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미국의 유명 여배우 샌드라 불럭에게 올해 오스카와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이라는 최고의 영예를 안겨준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의 첫 장면은 미식축구 사상 가장 충격적인 실화 장면으로 시작한다. 1985년 11월18일, 당시 최고의 쿼터백이었던 조 사이즈먼은 공을 패스하려는 순간 그의 왼쪽 뒤에서 태클한 로런스 테일러에 의해 몸이 꺾이는 심한 부상을 입고 그날로 선수생활을 은퇴해야만 했다.

지금 여러분이 일어나 오른손으로 공을 던진다고 생각해보라. 앞쪽과 오른편은 시야가 확보되지만, 뒤쪽과 왼편은 시야가 미치지 않는 ‘사각’(死角)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블라인드 사이드’이다. 이 사건 이후로 미식축구의 패러다임은 변하게 된다. 주로 오른손잡이인 쿼터백의 왼쪽 후방을 보호하는 레프트 태클의 연봉이 쿼터백 다음으로 높아진 것이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각종 사고를 바라다보면 공통적으로 ‘사각’을 미리 쳐다보는 노력을 게을리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뉴욕 타임스>는 현재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를 일으킨 비피가 사전경고를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조사가 진행중인 인천대교 버스 참사는 가드레일 등의 안전장치 설치 과정에서 도로 교통 사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각’을 무시한 결과는 이뿐이 아니다. 바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처음 그 의혹을 제기했던 사람으로, 정말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사각’을 측근인 자신이 미리 경고했음에도 이런 사태로 발전하기까지 예방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다.

이런 사각에 대한 무시나 무지는 왜 벌어질까? 첫째, 위기관리에서 ‘긍정적 사고’는 ‘독약’이다. 위기예방에서는 “괜찮을 거야”라는 사고보다는 “만약에 최악의 사고가 벌어진다면?”이라는 생각을 정기적으로 하고 사전조처에 대한 확인이 중요하다.

필자가 이 칼럼을 쓰는 날에도 한 외국 기업의 임원들과 하루종일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예방책을 생각해보는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는데, 이는 위기예방에서 매우 중요한 조처이다. 한 보험사 직원이었던 하인리히가 각종 사고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로 만들어진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한 번의 대형사고는 그 이전에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고, 300번의 징후가 발생한다.

둘째,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정부나 기업에서 대통령이나 최고경영자에게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상황에 대해서 솔직한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거의 힘들다고 봐야 한다. 이는 9·11 사태와 엔론 사태를 분석한 하버드대의 베이저먼과 컨설턴트인 왓킨스도 지적한 바 있다.

많은 리더들이 그러한 의견을 ‘재수없는 일’ 정도로 무시하거나, 그런 조언을 하는 부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하들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지키기 위해 그런 이야기는 피하게 되어 있다.

원작소설 <블라인드 사이드>의 부제는 ‘게임의 진화’이다. 왜 그럴까? 미식축구와 마찬가지로 삶이나 정치, 경영이라는 ‘게임’을 진화시키려면 ‘사각’을 보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발전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게임의 진화를 위해 사각을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리더가 나서서 정기적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 있는 이슈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진실이 있다. 쿼터백이 자신의 ‘블라인드 사이드’를 혼자서 볼 수 없듯이 리더 역시 자신의 사각을 절대 혼자서 볼 수가 없다.

더 중요한 진실? 흔히 그 리더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사각을 볼지는 몰라도, 솔직하게 위에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깥 이야기, 반대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내란을 일으키려다 사형당하다 1.

내란을 일으키려다 사형당하다

[사설] 윤석열·국힘의 헌재 흔들기 가당치 않다 2.

[사설] 윤석열·국힘의 헌재 흔들기 가당치 않다

나라야 어찌 되든, 윤석열의 헌재 ‘지연 전략’ [뉴스뷰리핑] 3.

나라야 어찌 되든, 윤석열의 헌재 ‘지연 전략’ [뉴스뷰리핑]

트럼프의 MAGA, 곧 동아시아로 온다 [세계의 창] 4.

트럼프의 MAGA, 곧 동아시아로 온다 [세계의 창]

[유레카] 대통령까지 중독된 알고리즘 공화국 5.

[유레카] 대통령까지 중독된 알고리즘 공화국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